매일신문

책사랑에 빠진 '올드보이'…윤영탁 네모북스 회장

나이로 선을 긋는 게 오늘의 세태다. 성과나 경륜도 아랑곳 없다. 아직 힘이 펄펄한데도 그저 쉬라고 한다. 생각하면 큰일이고 야속하지만 그렇다고 대드는 올드보이는 드물다.

네모북스 윤영탁(尹榮卓·73) 회장은 17대 총선 직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젊은 대통령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분 세대교체의 광풍을 기꺼이 인정했다. 그의 표명 이후 나이 든 의원들의 용퇴가 이어졌다. 그렇다고 누가 공로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떠나고 나니 그뿐이었다.

얼마 전 둘째 아들(46)이 3년 전 설립한 네모북스 회장을 맡았다. 네모북스는 경제·경영 전문출판서다. 지금껏 출판한 30여 권의 책 중 세간의 관심을 끈 책도 적잖다. 그러나 관심과는 달리 팔리는 양은 많지 않다. "명예 행정학박사인 회장에게 아들 놈이 영업하러 다니라고 한다"면서도 좋은 책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을 감추지 않는다.

학도병 1기다. 고교 1학년 (중학 4년)때 자원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용기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무모했지만 다행히 살아 돌아왔다.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킨 그에게 그 이후 군은 시련을 안겨준다.

5·16 혁명으로 국회가 해산되자 첫 직장이던 국회사무처에서 나와야 했다. 2년여 뒤 다시 공채1기로 국회로 들어갔다. 중학시절 은사 김재규가 유정회 의원으로 배지를 달고 왔다. 김재규가 건설부 장관으로 옮길 때 그도 따라갔다. 10·26 당시 그는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이었다. 이번에는 김재규 사람이라며 옷을 벗겼다.

3선을 했다. 정치인으로서 생활은 화려한 성공과는 거리가 있었다. 소속 정당도 신민당, 국민당, 한나라당으로 바뀌었다. 열심히 충성했지만 선거때만 되면 공천으로 괴롭혔다. 현역시절 적잖은 정치부 기자들은 그를 대구·경북의 미래를 고민하는 의원으로 꼽았다. 그런데도 지역에선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혹시 압도적 수를 뽐내던 경북고 출신이 아닌 탓은 아닐까? 답은 "NO"였다. 그러나 초면에 "경고 몇횝니다"라는 인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16대 국회에서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유아교육법 처리는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그러나 당시 그의 희망은 건설위원장이었다. 대구·경북의 미래를 위해서는 동해안 개발사업이 시급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2년 전 개통한 대구~포항 간 도로는 그의 공이 크다. 대구와 포항을 잇는 U자형 국토개발만이 살길이라고 강변한 결과다. 동해안 시대를 대비한 포항 신항만 건설도 빨리 매듭이 지어져야 한다고 본다.

고향 경산에는 아직 형수가 계신다. 그도 아직 대구에 거처가 있다. 대구 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여전하다. 그러나 현역때도 귀담아 들어주지 않은 마당에 올드보이가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그래도 대구와 경북이 경쟁관계에서 보완관계로 변해야 지역의 살길이 나온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친손 외손 합쳐 7명의 손자 손녀도 이제 마냥 기쁨조가 아니다. 생각도 행동도 서로 다른 탓이다. 얼마 전에는 손자 손녀들과 함께 노래방에 갔다. 벅차고 힘들지만 생각과 마음을 따라가야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이 밀려왔다.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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