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공복이냐 사복이냐

'어쩌다' 국회의원 한 번 하신 분이 그 뒤로도 자꾸 무리하게 노력을 했다. 옆에서 말렸다, "뭐 좋다고 또 하려 하십니까?" 그분 일갈 "이놈아, 니가 해봤냐, 해봤어? 해보지도 않은 놈이 뭐 안다고 나서?"

'제왕적 국회의원 전성시대'다. 적어도 지방 선거가 치러지는 곳에서의 대한민국 권력 구조는 대통령제가 아니다. 국회의원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권력을 쥐락펴락하는국회의원 권력제다.

대구'경북에서 국회의원 1명이 이번 지방 선거를 위해 공천하는 후보는 기초단체장 최대 4명, 광역의원 2명씩, 기초의원 7~30명이나 된다. 이를 위해 지역 국회의원 27명(한나라당 소속 26명)이 심사해야 할 출마 희망자는 기초단체장 200여 명에, 광역의원은 300명에 가깝고, 기초의원은 물경 1천300명을 넘나들 것으로 보인다. 물론 외부 인사가 포함된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한다지만 "공천에서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의 의견이 가장 존중돼야 한다"는 안택수 한나라당 대구시당 위원장 공언처럼 국회의원 마음이 공천을 좌우할 게 틀림없어 보인다.

지역에서 '한나라당 공천=당선'이란 공식은 거의 명제처럼 돼 있다. 따라서 투표일에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보다는 공천을 좌우하는 국회의원이 출마 희망자들에게는 훨씬 더 중요하고 잘 보여야 할 존재다.

이는 현장에서 벌써 입증되고 있다. 지금껏 지역에 국회의원이 '떴는데' 와서 인사를 안 하는 유일한 사람이 기초의원이었다. 바닥을 잡고 있는 기초의원한테 되레 국회의원이 가서 인사하는 게 엊그제까지의 풍경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기초의원 선거에 대해서도 공천제가 적용되면서 국회의원 앞에 선 기초의원 출마 희망자들 허리가 확 숙여졌다.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또 다른 집단이 있다. 당직자들이다. 드러내 놓고는 아니지만 공천 전 과정을 관리'보좌하면서 보이지 않는 파워를 행사한다.

문제는 공천 과정을 운동 경기에 비유하면 출마 희망자는 선수요, 국회의원과 당직자는 심판이고, 유권자는 관중인 셈인데 과연 관중을 위한 경기가 되겠느냐는 것이다.

새해 벽두 김성조 국회의원이 구미시장 선거에 나설 뜻을 비쳤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포기한 일이 있었다. 김 의원이 착각했던 가장 큰 대목은 선수와 심판의 역할을 구별하지 못한 점이다. "이번 지방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당 공천이고 국회의원은 그 작업을 공정하게 진행하는 심판이어야 하는데, 호루라기 내던지고 선수로 뛰겠다니 이게 무슨 망발인가"라는 여론이 형성될 것이라는, 세 살 먹은 어린이도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다.

국회의원이나 당직자들 임무는 공천 전 과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국민의 '공복'이 될 사람을 유권자들에게 추천하는 것이지, 자기 '충복' 뽑자는 게 아니다.

그런데 지금 착각하고 있는 국회의원이 김성조 의원만은 아닌 것 같다. 국회의원이나 당직자들 행태를 보면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한 국회의원은 말한다, "모 기초단체장한테 작년부터 공언했다, 무조건 공천 준다고. 그랬더니 지금 누구도 얼씬하지 않는다. 조용해서 좋다." 또 다른 국회의원 얘기는 이렇다, "시장'군수들이 2선, 3선 하면서 자신만의 왕국을 세웠다. 이런 단체장은 무조건 물갈이해야 한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은 이번에 기초의원-광역의원-기초단체장은 물론 광역단체장까지 공천이라는 미끼로 엮어서 국회의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의도는 없을까? 정당들은 다음 대선에서 오로지 당을 위해 열심히 뛰어 줄 이만을 세우려 하지는 않을까?

"일구야! 1만 원짜리 2천 원에 어떻게 안 되겠니? 대한민국에 안 되는 게 어디 있니?" 하는 '현대생활백수' 개그가 인기다. 국회의원이 이번 공천 과정에서 국민의 공복이 아닌 자기들 사복(私僕)을 내세워 유권자들에게 강요한다면 '일구'만 불러 대는 그 개그맨처럼 다음 총선에선 '백수'가 될 수도 있다.

이상훈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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