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28일 동안'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술을 찾는다. 울적한 마음을 달래거나 불안, 스트레스 해소 혹은 쾌락과 축배 등을 위해서다. 술은 해방감과 성취감을 안겨주어 때로는 만병통치약과 같은 효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영화 '28일 동안'을 보면 술의 빛과 그림자를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는 여류작가였던 주인공의 28일간 알코올 재활병동 생활을 그리고 있다. 술에 찌들어 사는 주인공은 음주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낸다. 이 사건으로 그녀는 법원으로부터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으라는 판결을 받는다. 그녀는 알코올 재활병동에서 여러 유형의 알코올 중독자를 만난다.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가들 가운데 알코올 문제를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 러시아 국민악파의 한사람이며 '전람회의 그림' 작곡가인 무소르크스키(1839~1881)는 만성 알코올 중독자였다. 술은 그의 예술 혼을 자극하고 스트레스의 탈출구가 되기도 했지만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무소르크스키는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불안하고 공포감이 생기는 알코올 금단성 섬망과 간질 발작에 시달렸다.

화가 레핀(1881)은 무소르크스키가 알코올 합병증으로 사망하기 한 달 전에 그의 초상화를 그렸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초점 없는 눈동자와 딸기코, 툭 불거진 비만한 복부는 영락없는 술주정뱅이의 모습이었다. 절대 금주하라는 의사의 권고를 무시하고 몰래 술을 마셨던 무소르크스키는 42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러시아 설원을 쓸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천재의 영혼은 알코올과 함께 떠나갔다.

알코올은 급성 중독, 금단현상, 환각 및 알코올성 뇌장애인 워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 등의 심각한 신경학적인 합병증을 일으킨다. 코르사코프 병은 장기간의 과음에 의한 비타민 결핍이 원인이다. 금방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기억장애를 메우려고 말을 지어내는 작화증이 심해진다. 집을 찾지 못하고 나중에는 사람까지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무소르크스키는 코르사코프 병으로 횡설수설하며 정신병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필름이 끊어지는' 현상은 알코올성 기억장애의 첫 징후이다. 급성 알코올 중독 상태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건망증(black out)으로 5~10분 전에 일어난 일을 회상하지 못하는 선행성 기억장애다. 술 취한 아빠가 딸을 성추행하고 음주 운전 사고를 내고도 태연하게 집에 와서 잠을 자거나 아내에게 손찌검하고도 다음날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오리발을 내민다. 기억력 손상은 있지만 다른 지적 기능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겉으로 멀쩡하게 보여 거짓말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쉽다. 가족들이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란 고통스런 일이다.

급성 알코올 중독 상태에서는 성폭력, 범행, 자살 등의 위험성이 증가한다. 화가 고흐는 자살로 삶을 마감하기 2년 전부터 측두엽 간질을 앓았다. 고흐가 극심한 조울증에 시달릴 때마다 남용한 압생트라는 술이 간질의 원인이었다. 압생트는 알코올 농도가 68도나 되고 신경독소가 내포된 독주다. 동료 화가였던 드가는 '압생트(1876)'라는 그림에서 만성 알코올 중독자의 타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가련한 고흐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음악에 취하듯 술에 취한다면 낭만적인 풍류객이 될 터인데 고삐 풀린 망아지같이 조절되지 않는 충동을 가진 취객은 골치 아픈 주정꾼일 뿐이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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