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영화계의 빅뉴스는 단연 '왕의 남자'. 눈에 띄는 스타도 등장하지 않고 제작비도 많지 않았지만 '왕의 남자'가 입소문을 타고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소식은 한국영화의 또 다른 잠재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제 영화계는 제 2의 '왕의 남자'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때마침 같은 장르인 사극영화 '음란서생'이 '왕의 남자' 관객 증가율이 주춤해질 즈음 개봉 예정이어서, '음란서생'이 그 후속타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탄탄한 줄거리
'반칙왕', '스캔들-남녀상열지사'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김대우 감독은 감독 데뷔작 역시 직접 쓴 시나리오를 들고 나왔다.
영화는 코미디와 로맨스, 사극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조선시대의 남녀상열지사를 보여준다.
명망 높은 사대부 집안 자제이자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윤서(한석규)는 권태로운 일상을 살아가던 중 뜻밖의 사건을 접한다. 왕실에 위조 족자를 납품한 범인을 잡으러 다니다가 난잡한 소설을 베껴 아낙네들에게 빌려주는 대본소를 발견한 것. 그곳에서 빨간 표지의 서책을 집어들고 알 수 없는 흥분을 느낀 윤서는 급기야 직접 음란소설을 쓰게 되고, 출판업자 황가(오달수)에게 재능있다고 칭찬받으면서 윤서의 음란소설 쓰기는 계속된다.
'추월색'이라는 필명으로 소설 '흑곡비사' 시리즈를 쓰던 윤서는 장안 최고의 음란작가가 되기 위해 소설에 삽화를 그려넣기로 한다. 삽화 화가로 지목한 사람은 바로 반대 당파에 속해 있지만 힘찬 붓놀림을 지닌 의금부 도사 광헌(이범수).
"꿈꾸는 것 같은 거, 꿈에서 본 거 같은 거, 꿈에서라도 맛보고 싶은 거." 황가는 최고의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 '진맛'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윤서는 아련하기만 한 진맛의 의미를 두고 고심한다. 하지만 후궁 정빈(김민정)을 만나면서 어렴풋이 그 이치를 깨달아가고, 궁을 나온 그녀와 관계를 맺기에 이른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윤서와 광헌, 왕과 정빈은 파멸의 위기에 처하고 영화는 후반부에 사랑과 음모, 배신이 뒤엉켜 절정을 향해간다.
◇화려하면서 단정한 의상과 미술
'음란서생'은 고증에 기반하면서도 영화적 특성을 잘 드러내는 의상과 세트만으로도 볼거리가 풍부하다.
'야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영화'답게 영화 '음란서생'에서 등장인물은 대부분 몇 겹의 옷을 겹쳐 입는다. '단순하게 한 벌만 입어서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다'는 이유. 왕과 정빈이 입는 옷은 매우 사치스럽지만 화려한 비단 위에 또 한 겹의 천을 덧대고 은은하게 숨을 죽여, 경박한 느낌을 지워나갔다.
정빈의 평상복으로는 엷은 분홍빛 의상으로 통일신라시대 복식을 차용했고 유기전 밀실에서 윤서를 만나는 순간에는 붉은 선홍색 치마저고리를 입어, 극의 줄거리에 색감을 불어넣었다.
작은 소품 하나에도 조선시대 느낌이 나도록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황가는 '작가라면 이런 안경 정도는 써야 한다'면서 선물한 윤서의 안경은 한 안경수집가가 소장하고 있던 조선 후기 안경으로, 실제로 중인이 썼던 철제 무테 안경이다.
◇'음란서생', 제2의 '왕의 남자' 될 수 있을까?
'음란서생'이 '왕의 남자'의 열풍을 이어받을 수 있을지 관심을 끄는 이유는 둘 다 영화계에서 불모지나 다름없는 사극영화이기 때문이다. '음란서생'이 성공할 경우 사극영화가 충무로의 새로운 흥행 아이콘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것.
정색하고 웃기다가 돌연 슬프다가 다시 질펀한 성적 농담을 내뱉기도 하는 등 한 장르에 그치지 않고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점도 관객을 끌어들이는 데에 한몫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눈에 띈다. 고어와 현대 어투를 오가는 혼란스러운 대사와 영화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속도감을 잃고 늘어지는 드라마가 그것이다. 또 '왕의 남자'와는 달리 '18세 이상 관람가'라는 점도 관객층을 한정시켜 흥행의 발목을 잡는 요소 중 하나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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