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국가 유공자

한 전직 경찰관이 진료를 받기 위해 보훈병원을 찾았다. 그는 경찰관으로 재직 중이던 1980년대 대학생 시위 진압을 위해 출동했다가 시위대가 던진 돌에 맞아 한쪽 눈을 실명한 보훈 대상자다. 그는 병원 로비에서 당시 학생 시위에 앞장섰던 운동권 출신과 조우했다. 시위를 막는 경찰을 향해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주도하던 학생이었다.

◇당시 운동권 학생들에게 경찰은 '적(敵)'이었다. 정부와 공권력은 공공연히 적으로 불리고 타도의 대상이었다. 적과 적이라 할 두 사람이 보훈병원에서 마주친 것이다. 시위 학생도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인정을 받아 보훈병원을 이용하러 온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그저 웃고 스쳐 지나갔다고 한다. 반가운 웃음이 아니라 쓴웃음이거나 비웃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 17만여 명이던 보훈대상자 수는 2002년 66만여 명, 2003년 71만여 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2002년 광주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과 2004년 특수임무 수행자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대상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어제 헌법재판소는 7'9급 공무원 시험과 교원 임용 시험에 응시한 국가유공자 본인 또는 그 가족에게 10%의 가산점을 주도록 한 법률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가산점 대상이 되는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의 수가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공무원 시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을 고려할 때 관련 조항은 일반 응시자의 공무 담임 기회를 제약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지난 2001년 같은 사안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었다. 결국, 대상자의 급증이 헌법 불합치 결정의 결정적 요인이 된 것이다.

◇재판부는 "취업 보호 제도의 대상자는 '국가유공자' '상이군경' '전몰군경의 유가족'으로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적시했다. 이에 반해 헌법에 부합한다는 소수 의견도 있다.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는 가능한 한 최대의 성의를 표시하는 것이 헌법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관련법 개정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논의 과정에서 적이었던 쌍방이 모두 국가 유공자가 된 기묘한 상황도 어떻게든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재열 논설위원soland@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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