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첩보원'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 뛰어난 문장가로 당시의 틀에 박힌 고루한 문풍과 달리 톡톡 튀는 문체로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그는 홍대용'박제가 등과 함께 조선이 청나라의 선진 문물과 실학사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북학파(北學派)의 거두이기도 했다. 정조 4년(1780) , 팔촌형 박명원이 건륭(乾隆) 황제의 칠순 잔치 축하 사절로 파견되자 연암도 함께 따라나섰다. 정식 수행원은 아니지만 청나라의 풍물도 구경할 겸 조선이 배우고 받아들일 만한 점을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기 때문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연경에 도착했지만 황제가 여름 별궁이 있는 열하(熱河)로 떠나고 없자 숨 돌릴 새 없이 말머리를 돌려야 했던 일, 강을 건너다 죽을 뻔했던 일 등 숱한 사건들이 잇따랐다. 먼 길을 돌아가느라 고생도 많았지만 그 덕택에 청나라의 다양하고 신기한 풍토와 선진 문물, 그곳 학자들과의 교유 등 다양하고 폭넓은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압록강 도강에서 시작된 여정은 산해관과 연경을 거쳐 열하로 갔다가 다시 연경으로 되돌아 가는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온갖 애환과 에피소드가 끊이지 않는 나날 속에서 연암은 그날그날 보고 접한 것들을 매우 상세히, 실감나게 기록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바로 우리 고금의 명저 중 하나로 꼽히는 '열하일기(熱河日記)'다.

◇새로 단장된 국정원 안보 전시관에 박지원'안중근'문익점 등이'역사 속의 정보 활동'인물로 소개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중 연암에 대해서는 "자연스러운 면담으로 첩보 활동을 한 케이스", '열하일기'에 대해서는 "박지원의 대(對)중국 첩보 보고서"로 소개하고 있다. 석 달간의 청나라 여행을 통해 집과 성곽 건축시의 벽돌 사용법, 교량, 도로, 방하(防河), 선제(船制) 등 갖가지 선진 문물을 기록한 것을 '첩보 활동'이라 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는 "완벽한 신분 가장으로 암살 공작에 성공한 케이스"로, 고려말 원(元)나라에 갔다가 붓두껍에 목화씨를 숨겨 온 문익점에 대해서는 "산업 기밀 수집에 성공한 케이스"로 각각 소개했다. 똑같은 대상이라도 관점에 따라 이렇게도 달리 해석될 수 있다니…. 일면 거부감을 주기도 하지만 일면 흥미로운 관점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세 인물에 대한 색다른 시각에 정작 그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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