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다. 춥고 어두운 겨울을 지나 춘분에 이르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며 땅에는 따뜻한 온기가 내린다. 농부들이 한 해 농사 준비를 서두르는 시기도 춘분 전후다. 그러나 춘분은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다. 이 즈음의 바람은 의외로 매섭고 차다. 이른바 꽃샘추위다. '2월바람에 김치독 깨진다'는 말이나 '꽃샘에 설 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옛말은 꽃샘추위의 위력을 알게 한다.
쪊지난해 3월의 추위는 유별났다. 섭씨 영하 6~7도에 매서운 바람을 동반, 사람들을 얼어붙게 했다. 옛 사람들은 꽃샘추위를 겨울 추위 이상으로 경계했다. 꽃샘추위는 바람 신(神)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모진 바람을 불게 하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봄이 왔다고 속옷을 훌훌 벗어던지지 말라고 한다. 고기잡이 배도 바다에 나가지 않았다. 먼길 가는 배도 띄우지 않으며 봄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고비를 조심하고 경계했다.
쪊며칠 전 최연희 의원의 술자리 성추행 사건을 두고 정치권 일부에서는 긴장이 풀린 방심에서 비롯된 어처구니없는 일로 평가한다. 지금은 위세가 예전만 못하지만 당 사무총장에 곧 다가올 지방선거 공천심사위원장으로서의 잘나가는 자리가 오히려 재앙을 불러왔다고 본다. 평소 그의 처신을 볼 때 이번 사건은 긴장이 풀린 방심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연일 대서특필되고 있는 이해찬 총리의 골프 파문에도 마찬가지 분석이 많다.
쪊이 총리의 지나친 자신감이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을 키웠다고 본다. 동료 의원을 훈계하고 조롱하며 세간의 여론을 무시해 온 자신만만한 처신이 화근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을 두고 "해변에 놀러 온 사람 같다"고 한 이명박 서울시장도 구설수에 휘말렸다. 비난이 거세지자 급기야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이 "여론조사에서 잘 나오니까 긴장이 풀린 것 아니냐"며 간접적으로 꾸짖고 나섰다.
쪊꽃샘추위가 설 늙은이를 얼어죽게 한다는 말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정치를 비롯, 사회 각 분야에서 정점을 향해 달리던 적잖은 사람들이 정점의 바로 코앞에서 맥없이 몰락하곤 했다. 고지가 바로 저기라고 여기는 순간의 방심과 자만이 평생 바쳐온 노력과 희망을 한순간에 날려 버린 것이다. 자만과 방심을 조심하라는 게 꽃샘 바람에 실려오는 메시지가 아닐까.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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