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씨앗

위세 좋게 온 천지를 뒤덮던 황사도 수줍은 봄비 앞에서는 힘을 잃었다. 저 딱딱한 수피(樹皮) 아래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봄비에 요술처럼 연둣빛 새 잎들이 돋고, 수수꽃다리 향내가 짙어진다. 자분자분 내리는 봄비는 그래서 꽃 비요, 생명의 녹우(綠雨)다.

먼지바람 부는 봄날의 한 줄기 비, 메마른 사막에 숨겨진 샘물처럼 세상을 맑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A Man Who Planted Trees)'의 노인은 한 사람이 심는 희망의 씨앗이 얼마나 크게 자라는지를 새삼 알게 해준다.

도보 여행길에 나선 한 프랑스 젊은이가 폐허와 거친 바람만 남은 황무지를 지나게 됐다. 물을 찾아 헤매던 그는 한 양치기 노인을 만난다.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 젊은이는 도토리를 한 알 한 알 정성껏 골라내는 노인에게 호기심이 갔다. 알고 보니 노인은 가족을 잃고 홀로 살면서 누구 땅인지도 모르는 불모지에 3년 전부터 매일같이 도토리와 너도밤나무 등을 심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젊은이가 다시 그곳에 갔을 때 황량했던 불모지에선 나무들이 싱그럽게 자라고 있었다.노인은 여전히 나무를 심고 있었다.

다시 세월이 흐른 뒤 그곳에 갔을 때는 광활하게 펼쳐진 산마다 숲이 우거지고, 물이 흐르고,새들이 노래했다. 사람들이 떠났던 마을에는 다시 웃음소리와 활기가 넘쳐났다. 사람들은 숲이 자연적으로 생긴 것으로 알았지만 외로운 삶 속에서 끝내 말조차 잃은 노인은 옛날처럼 여전히 나무를 심으며 행복해 했다.

미국 슈퍼볼 영웅이자 한국계 혼혈 젊은이 하인스 워드를 생각해 본다. 노란 얼굴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심과 어떤 이도 무장해제 시킬만한 환한 미소, 고향을 찾아온 감격에 겨워하던 그는 우리네 좁아터진 마음을 되돌아보게 했다.

고독 속에서도 줄기차게 불모지에 생명을 심은 노인, 가난과 소외 속에서도 꿈을 이루었고 이 땅 혼혈인들의 가슴에 새로운 비전을 심어주었으며, 우리의 편견을 부끄럽도록 만든 워드. 그들은 분명 '희망'이라는 이름의 씨앗을 심은 사람들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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