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당시 톱감독과 톱스타 커플로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던 신상옥-최은희, 홍성기-김지미 부부가 운명의 한판 승부를 벌였다. 우연찮게도 고전 춘향전의 메가폰을 동시에 잡게 된 것이다. 홍 감독은 '춘향전', 신 감독은 '성춘향'이란 제목으로 자신의 부인을 춘향으로 내세워 총력 투구했다. 흥행 결과는 신-최 커플의 압승. 참패한 홍-김 부부는 이혼에 이른다.
○…한국 최고 감독의 위상을 확고히 한 신상옥은 왕성한 작품활동으로 1960~70년대 한국 영화 전성기를 이끈다. 1952년 전쟁통에 '악야'로 감독에 데뷔, '꿈' '젊은 그들' '동심초' 등으로 실력을 다지고 60년대 들어 '로맨스 빠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연산군' '폭군 연산' '열녀문' '벙어리 삼룡' '빨간 마후라' 등 손으로 꼽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주옥 같은 영화를 남겼다.
○…당시 흑백영화처럼 궁핍했던 국민의 가슴에 총천연색 꿈을 전파했던 신상옥이 어젯밤 별세했다. 향년 86세. 그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대종상영화제 감독상 4회 수상과 함께 아시아 영화제 감독상 4회 수상으로 아시아의 거장으로 우뚝 선 신상옥은 그러나 전혀 엉뚱하게도 북한 김정일에 의해 화려한 영화 인생이 급전한다.
○…1978년 1월 영화제작을 협의하기 위해 홍콩을 방문했던 최은희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된 데 이어 7월 신상옥도 납북된 것이다. 신-최 커플은 김정일의 지원 속에 '불가사리' '돌아오지 않는 밀사' 등 7편의 영화를 만들며 탈출의 기회를 노리다 8년 만인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미국 대사관을 통해 극적 탈출에 성공한다. 미국에 정착한 신상옥은 1992년 '닌자 키드'를 제작,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첫 한국인 감독으로 기록됐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을 맡기도 한 신상옥은 지난 2000년 한국으로 돌아와 영화아카데미를 설립하고 대학 석좌교수를 맡아 후진 양성에 주력해 왔다고 한다. 영화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고 치매노인을 주제로 한 신구 주연의 '겨울이야기'를 유작으로 남겼다. 그는 '영화처럼' 살았다. 그러나 그의 인생을 영화처럼 만든 김정일과 그를 포옹한 DJ에 대해 맹렬한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일하는 것이 제일 편하다." 그가 남긴 말이다.
김재열 논설위원 soland@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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