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로또' 백일몽

'판교 로또'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던 '신종 복권게임'이 지난주에 마무리됐다. 몇 천 대 일의 경쟁률까지 나오고, 46만여 명이 참여한 게임이었으니 그 열기가 참으로 뜨거웠다. 당첨된 후 10년간 묻어두면 상당한 시세 차익이 기대된다며 우리 회사의 직원 상당수도 동참했다고 하니 이렇게 흥행에 성공한 복권도 흔치 않다.

기록상 복권의 역사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대부터 연회에서 추첨을 통해 손님들에게 다양한 상품을 나누어 준 것이 시초였다. 5대 황제였던 네로 시대에는 이것이 더욱 대중화되어 일반인도 참여하고 직업, 땅, 노예, 또는 배 등을 상품으로 받았다고 한다.

요즘처럼 당첨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번호추첨식 복권은 1530년경 이탈리아의 플로렌스 지방에서 처음으로 시작됐다. 이후 중세 유럽에서는 복권이 한판 도박처럼 변하면서 도시전체가 상품으로 내걸린 황당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복권이 사회적으로 유용하게 쓰인 경우도 있다. 18세기 미국의 지방도시들은 교회, 학교, 도로, 항구, 다리 등을 건설하기 위해 50% 정도 민영화된 복권을 발행했다. 이 재원은 대학을 설립하는 데도 사용돼 콜롬비아·뉴저지·예일·하버드·프린스턴 등 명문대학들을 탄생시킨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필자도 오래 전 몇 차례 재미삼아 복권을 구입해 본 경험이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고, 운좋게 당첨되면 그 돈을 어떻게 쓸까 하는 괜한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500원짜리 한두 장 당첨되는 게 고작이었다. 그나마 새로운 복권으로 바꾸면 그 다음에는 하나도 당첨되지 않았다. 헛된 꿈, 백일몽 그 자체였다. 그 후로는 복권을 사지 않았다. 근래에 발행되고 있는 로또를 보면서 호기심에 한 번 사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가 이내 예전의 기억에 마음을 접곤 한다.

복권은 사행심 조장 등 여러 가지 폐해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필요에 의해 긴 역사 속에 유지되어 온 제도이다.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단 한 번의 행운으로 인생역전을 할 수 있다는 꿈을 갖게 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불만을 잠재우는 진통제 역할까지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회든 개인의 발전과 성장방향이 투명하고 예측이 가능해야 선진사회가 될 수 있다. 별다른 노력없이 불투명한 요행에 기대어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 사회가 그만큼 후진적인 시스템과 토양을 갖고 있고, 성실과 노력을 다하는 개인의 발전과 성공을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는 방증인 것이다.

'대한민국=부동산 공화국'이라는 불명예의 그늘도 이러한 맥락에서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더이상 냉·온탕식 정책에 편승해 아무런 노력없이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서는 안되겠다. 부동산이 복권 사는 것과 같이 '노력없이 과도한 차익을 얻고자 하는 투기행위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면 이제는 '생활의 질(質) 향상'을 위한 삶의 공간으로 인식될 수 있게 여러 가지 시스템을 완비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서민들에 대한 양질의 주택공급을 목표로 추진된 '판교 로또'가 실수요자들에게 쾌적한 주거지로 진입할 수 있는 희망을 주기는 했지만, 그 확률이 지금처럼 희소하다면 '또 하나의 복권'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청약에 참여한 46만 명 중 당첨된 사람이야 뛸 듯이 기쁜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의 실망과 좌절, 안타까움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정책 당국은 이러한 점을 반영해 향후 더욱 일관성있는 정책과 공급 확대로 '열심히 일하는 보통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고,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 풍토와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우리 국민들도 땀 흘려 노력하지 않고 얻는 횡재는 결코 삶을 윤택하게 해줄 수 없으며 오히려 인생을 비극의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로또 당첨을 꿈꾸는 백일몽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성실과 근면으로 미래를 설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요행에 기대는 심리가 사라지고 '불확실성이 걷혀진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 정부와 국민 모두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배영식 한국기업데이터㈜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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