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과학을 알아야 교양이 잡힌다] 식물에도 자기 방어력

우리 옆집 정원은 잘 정돈되어 있어서 그 동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에 반해 우리 집 정원은 좀 산만했다. 땅을 고르게 다듬지도 않았고 수선화나 튤립을 심지도 않았다. 대신에 각종 야생화를 키워 어수선한 잡초 밭처럼 보였다. 그러나 백여 종의 식물이 어우러져 살고 있어서 봄부터 가을까지 언제라도 다양한 꽃이 피곤 하였다. 저녁 식사 후 정원을 가꾸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낙이었다. 크고 작은 꽃이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과 색깔로 피어나서 은은한 향기를 보내오면 하루의 피곤이 씻기고 삶의 의미가 한층 더하는 것 같았다.

건강한 숲을 걷노라면 다양한 나무와 풀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조림된 소나무 숲이나 입갈나무 군락은 먼데서 보면 정돈되어 보이나 막상 그 안을 들어가면 단조롭고 풀들도 잘 보이지 않는다. 숲이 오래될수록 단풍나무 참나무 서어나무 박달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며 그러한 숲에는 찔레도 더불어 살고 산목련과 때죽나무도 아름다운 꽃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최근 재선충 피해로 소나무들이 수난을 격고 있다. 특별한 방제 방법도 없어 이러다간 우리나라에서 소나무가 모두 없어질 것이라는 보도를 접하기도 한다. 경주 왕릉 근처까지 재선충이 퍼졌다고도 한다. 아름답게 곡선을 그리며 자라난 소나무가 없는 왕릉을 상상해 본다. 김유신 장군묘 주변의 오래된 소나무가 산불로 유실된 후 나도 그곳을 찾는 횟수가 부쩍 줄었다.

숲이 건강하면 벌레나 병균의 침입에 대해 자신들을 잘 보호한다. 한 나무가 병에 걸렸다고 해도 옆으로 퍼져나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식물들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능력이 탁월하지만 침입자도 이 방어벽을 뚫고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식물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적을 막고 있어 재선충이 소나무는 공격하지만 참나무나 느티나무를 공격하지는 못한다. 농가에서 농약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도 한 종류의 작물을 집단적으로 재배하기 때문이다. 몇 가지 작물이나 품종을 섞어서 키우면 질병에 훨씬 강하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 집이 벌과 나비의 천국이 된 것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보너스였다. 꽃과 곤충의 조화는 신이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다. 땅거미가 질 때면 벌새까지 가끔 찾아오곤 하였다. 그리하여 그 다음 해에는 더욱 많은 야생화를 심고 벌과 나비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해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우리 정원을 너무나도 좋아한 벌들이 아예 이사를 온 것이다. 지하실로 들어가는 길 양쪽이 돌담으로 쌓여 있었는데 그 돌들 사이에 굴을 파고 자리를 한 것이다. 아이들이 한참 자라는 나이여서 혹시 벌에 쏘이지 않을까 걱정을 했으나 찾아온 손님을 쫓아 보낼 수도 없었고 특별한 사고도 일어나지 않아 함께 살기로 했다.

그렇게 살던 평온한 삶에 변화가 일어났다.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과 뒹굴며 지낸 추억이 담긴 곳을 떠나려 하니 매우 섭섭했다. 정성을 들여 가꾸어 놓은 꽃밭을 두고 떠나자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한 가지 어려운 일이 생겼다. 땅벌이었다. 우리는 식구처럼 함께 지냈지만 새로 이사를 올 가족에게는 불청객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댁은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벌에 쏘이기나 하면 큰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을 보내기로 했다.

곤충을 죽이는 화학 약품을 쓸 수는 없는 것이었다. 좀 미안한 일이었지만 벌에게 우리가 그들을 싫어한다는 신호를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 출입구 일부를 흙으로 막아버렸다. 그랬더니 벌들은 옆으로 새로운 입구를 내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잘 견디었다. 궁리 끝에 벌이 가장 싫어하는 방법을 쓰기로 하였다. 쑥 잎으로 입구를 막은 것이다. 다음날 입구는 말끔히 열렸으나 벌들은 한 마리도 없었다. 웅웅거리면서 자연을 맑히던 그 소리가 떠난 것이다. 나는 이제 그곳을 떠날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쑥으로 연기를 내어 모기를 쫓았다. 단순한 매운 연기만으로 벌레를 멀리한 것이 아니라 쑥에는 곤충이 싫어하는 향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는 자스민산이란 물질로 해충에게 공격을 당하면 식물은 이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고 주변의 식물에게 신호를 보내 적의 침입에 대비하게 하게 한다. 이렇게 식물은 다양한 물질로 자신을 무장하고 서로 대화를 한다. 우리처럼 소리로 대화를 하지는 않지만 식물들도 주변의 동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가 신호를 보내고 협조한다.

유난히 길고 춥던 겨울이 지나고 아카시나무 꽃이 피어나는 봄의 절정에 와있다. 주말에 가족들과 숲을 찾으면 그들의 대화 소리를 코로 느낄 것이다.

안진흥(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