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北京)에 산다고 해서 모두 베이징 시민은 아니다. 베이징 호구(戶口)를 가진 사람은 베이징런(北京人)이지만 호구가 없는 사람은 외지인이다. 최근 이 같은 중국의 호구제도를 정면으로 다룬 사회성 짙은 영화가 출시돼 화제가 되고 있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된 '런짜이베이징(人在北京·감독 리샤오홍·李少紅)은 호구가 없는 외지인들에 대한 베이징 사람들의 차별 등 온갖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산시성의 한 가난한 산촌 출신인 '메이꾸이'는 베이징 한 대학에 입학, 북경 출신의 대학생과 사랑에 빠졌지만 베이징 호구가 없는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버림받는다. 남자는 "너의 목적은 오로지 베이징에 머무르는데 나를 이용한 것 아니냐. 무슨 감정타령이냐?"며 그녀를 비판한다. 그녀는 깨닫는다. 무엇보다 베이징 호구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메이꾸이는 베이징 사람과 결혼, 2년이 지나면 호구를 받을 수 있는 조례를 알아내 소아마비를 앓은 장애인인 장핑(張平)과 결혼한다.
이혼하면 호구는 소멸될 수도 있다. 메이꾸이는 호구를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장핑을 위해 아이를 낳고는 이혼을 하고 장핑은 그런 그녀를 위해 이혼의 잘못은 자신에게 있다며 호구가 사라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마치 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한 절차와 비슷하다.
메이꾸이는 장핑과 아이를 남겨둔 채 집을 떠난다. 메이꾸이는 호구를 갖게 된 지금 예전보다는 훨씬 생활하기가 낫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북경은 정말 미치도록 오만한 도시예요. 난들 왜 양심이 없고 자식이 보고 싶지 않겠어요?"라고 말한다. 영화는 메이꾸이처럼 호구를 얻은 외지인도 차별을 받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후베이(湖北) 출신의 천밍(陳明)은 베이징의 한 대학 졸업 후 운좋게도 베이징에 있는 국가기관에 취업, 북경호구를 취득한다. 베이징에서 살고 베이징 호구를 갖고 있고 베이징에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는 그도 외지인이라며 차별을 받는다. 그가 사귀던 여자친구의 부모는 그가 외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결혼을 반대했다. 베이징 사람은 "외지인은 외지인일 뿐"이라고 내뱉는다. 지독한 지역차별이다.
영화는 이처럼 개혁개방 이후 중국 인민들의 생활이 급변했는데도 이들을 구속하고 있는 호구제도의 모순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호구제도는 1950년대 중국 정부가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을 막기 위해 도입했던 일종의 인구관리제도다. 한 번 부여받은 호구는 좀처럼 바꿀 수가 없다. 호구가 없으면 의료와 교육 등 사회보장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중국 경제성장의 밑바탕이 된 1억여 명의 농민공들은 도시 호구가 없어 고통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베이징의 외지 인구 역시 320여만 명. 5분의 1이 외지인이다. 그러나 호구제도가 개혁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허난(河南)성은 주택임대만 해도 호구 등록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도농(都農) 통일 호적제를 도입했고 산둥(山東)성과 저쟝(浙江)성도 이르면 내년부터 농민공에게도 사회보장혜택을 주기로 하는 등 호구제에 일대 변화가 일고 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