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마다 그랬듯이,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의 민원성 부탁과 정책 반영 요구가 빈발하는 모양이다. 정당한 경우도 있겠으나, 입후보자들을 향해 표를 볼모로 집단이기주의를 내세우는 사례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이 때문에 실현 불가능한 사안을 두고 양자 사이에 표를 의식한 이기주의와 이기주의가 맞물리는 모습까지 빚어진다.
이번 선거가 정책 공약 대결로 나아가는 분위기는 일단 고무적이다. '참공약' 검증을 위한 매니페스토 활동이 두드러지는 점도 그렇다. 하지만 그 이면이 문제다. '공약(公約)'이란 이름으로 '공약(空約)'을 부추기거나 만드는 경우가 많고, 그런 거품엔 이기주의적 무분별이 고개를 들고 있게 마련이다. 그런 약속은 요구하지도, 하지도 말아야 한다.
여·야 모두 이슈가 될 만한 정책을 '얼마만큼 내놓고 있는가'도 문제다. 재탕?삼탕이 허다하며, 폭발력 있는 공약은 만나기 어렵다. 문제의식이나 통찰력, 새 비전을 보여주기보다는 '백화점'식 나열과 엇비슷한 공약, '지당한 말씀' 되풀이, '면피 수준'이 대부분이다.
그보다 더 큰 걱정거리는 상대방 깎아내리기와 상처 입히기, 유권자들의 무관심이다. 사람들이 붐비는 길목과 거리에선 후보자들이 얼굴과 이름 알리기로 북새통이다. 확성기 소리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투표를 해야 하는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제대로 알게 되기라도 할까. 이익집단 외에는 관심 밖이고, 표를 모으려는 후보자들의 목소리만 소음처럼 겉돌고 있는 감도 없지 않다.
지난 주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피습, 흉기로 큰 상처를 입힌 사건은 충격과 실망감을 넘어 절망감을 안겨줬다. 극단적인 증오의 정치문화가 빚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인신공격과 부풀려진 폭로전이 여전한 가운데 폭력까지 불사하는 선거문화는 '추악한 졸전' 이상의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미래지향적으로 꿈과 용기를 안겨주기보다는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갖가지 술수와 책략, 극단적인 깎아내리기와 폭력으로 얼룩져 천박하고 비열하다는 느낌마저 떨칠 수 없게 한다.
월드컵과의 함수관계 역시 우려되는 대목이다. 벌써 월드컵 열기가 후끈 달아올라 있지만, 상대적으로 지방선거 분위기는 후보들의 '일방적 소음' 수준이라면 지나칠까. 올해부터 새내기 19세 유권자들이 주권을 행사하게 되나 이들을 포함한 20대들의 투표 참여율과 그 향방도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과연 이들이 얼마만큼 선거에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된 주권행사를 하게 될는지….
올해부터의 중선거구제에 따르는 우려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한 선거구에서 복수 당선자를 내고, 기초의원 선거에도 비례대표제가 도입돼 한 사람이 한꺼번에 무려 6표나 찍어야 한다. 이런 와중에 후보와 공약을 제대로 알 턱이 있을까. 또한 한 정당의 후보를 함께 밀어주려 해도 두 당선자를 나란히 내는 데 문제가 없지 않은 듯하다. 그렇게 되면 결국 나눠먹기를 하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성숙하려면, 유권자들이 여론과 표로써 제대로 된 새 길을 틀 수 있어야 한다. 유권자들은 눈앞 집단이기주의를 벗으면서 거기에 영합해 표심을 잡으려는 입후보자들의 행태를 막아야 한다. 증오와 감정의 극단화로 폭력까지 서슴지 않는 구태는 국민을 지칠 대로 지치게 하며, 정치 혐오감과 외면을 부를 따름이다.
썩은 냄새가 여전한 '이전투구'식 선거운동의 소음과 그 거품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흥분하지 않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성(理性)을 잃지 않고 선거에 참여해야 하며, 눈앞의 이기주의와 극한 대립을 넘어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고 만들어 나가려는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나라가 경제적?문화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은 역사가 말해준다. 오늘의 경제적 위기 상황은 근시안적이고 잿밥에 눈이 어두운 정치인들이 불렀다. 그러나 그것에 의한 고통과 극복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몫임도 깊이 새겨야 한다. 일찍이 링컨은 '선거를 공명하게 치를 수 있는 사람들은 반란도 역시 진압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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