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사회는 W세대(World Generation) 또는 R세대(Red Generation)라 불리는 젊은이들에 열광했다.
거리응원 세대라 일컬어졌던 이 젊은이들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거리응원 문화를 선보이며 모래알 개인주의로 뿔불이 흩어져 있던 신·구세대의 조화와 융합은 물론 국민 대통합을 현실화시켰다.
그 후 4년,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다시 '일을 내고' 있다. 20대 젊은 선수들이 주축인 태극 전사들은 1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월드컵 대 토고전에서 통쾌한 역전승을 일궈냈고, 20대 붉은악마가 주도한 거리응원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역동적 응원 문화를 또다시 꽃피웠다.
세계 최고의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치닫는 한국. 갈팡질팡하는 정치권, 또다시 내리막길을 걷는 경제상황.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었던 한국 사회에 '버릇없는 아이들'로 평가절하됐던 한국의 젊은이들이 다시 힘을 불어넣고 있다. 대한민국의 힘을 전세계에 알리며 '희망이 살아있는 한국'을 보여주고 있는 것.
13일 한·토고전 거리응원을 위해 14만 인파가 밀집한 대구 범어네거리와 두류공원 야외음악당. '붉은 악마'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젊은 힘'은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모두 하나로 만들었다.
범어네거리 중앙무대에서 시민응원을 이끈 최현기(24) 씨. 2002년 월드컵 이후 스무살때 대구 붉은악마에 가입한 그는 "수만명 앞에서도 전혀 떨리지 않았다."며 "20대 젊은이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어떤 두려움없이 혼을 바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아마추어 무선동아리와 학과 로봇동호회 마이크로시티 회원으로도 활동하는 최 씨는 한가지 일에 재미를 붙이면 몰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전형적 '월드컵 세대'.
온라인 회원만 2천 명에 이르는 대구 붉은악마를 이끄는 김은희(28.여) 씨. 평범한 회사원일 뿐이라고 밝힌 김 씨는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정열을 바치는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 젊은이"라고 규정했다.
2001년 발족 당시 수십명에 불과했던 대구 붉은악마는 20대를 중심으로 지난 5년새 역내 최대 자발적 민간 단체로 발돋움했으며 대구·경북은 물론, 대한민국 전체를 하나로 묶는 '국민대통합'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20대 젊은이들이 주축인 태극전사들도 기성세대들에게 대한민국의 긍지를 심어줬다.
이청운(57.대구 달서구 상인동) 씨는 "독일현지 경기장에서 응원을 펼친 한 붉은악마가 '대한민국 안되는 게 어딨니. 다~돼.'라는 글귀를 새겨놓은 모습을 잊을 수 없다."며 "젊은 선수들과 응원단들은 패배의식에 젖은 기성세대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새희망을 일깨웠다."고 말했다.
박기동(63·대구 남구 봉덕동) 씨는 "1950년대 동·서독으로 나뉘어 패전의 상처에 곪아 있던 독일은 월드컵 우승을 통해 국가재건에 성공했다."며 "고령화가 심각하다고 하지만 월드컵에서 보여준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열정과 패기를 통해 경제 성장과 국민 대통합의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김영범 대구대 교수(사회학 전공)는 "13일 토고전에서는 20대의 역동적 응원에너지 뿐만 아니라 질서정연한 경기관전 태도와 승부에 연연하지 않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살아있었다."며 "우리나라의 창조적 20대들이 기성세대가 되면 부정비리로 얼룩진 우리사회가 그 폐쇄적 틀을 깰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보았다."고 기대했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전공)는 "경제적 이해관계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집단 행동을 보였던 기성세대와 달리 월드컵 세대의 중심을 이루는 20대는 공통의 정서, 스타일에 따라 뭉쳐 차별과 분화를 일시에 떨궈내는 힘을 가졌다."며 "이같은 20대 신 문화가 우리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대통합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추미애 "정부 때문에 국민 고통…미리 못 막아 송구"
[기고] 박정희대통령 동상건립 논란 유감…우상화냐 정상화냐
양수 터진 임신부, 병원 75곳서 거부…"의사가 없어요"
'핵볕'으로 돌아온 '햇볕정책'…與 '민주당 대북 굴종외교 산물' 논평
이재명, 진우스님에 "의료대란 중재 역할…종교계가 나서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