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물난리 소송' 人災 확인되면 이긴다

시설물 하자가 관건…입증 안되면 배상 어려워

폭우로 피해를 입은 전국의 수재민들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건설업체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낼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향후 재판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주목된다.

안양천 제방이 무너져 가옥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영등포구 양평2동 주민들이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며 지난 주말 폭우로 도로변 절개지가 무너져 영동고속도로에서 장시간 고립된 여행객들도 법정싸움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설치·관리상 하자 여부가 쟁점 = 지방자치단체 등 관리 당국이나 공사업체 등이 제방 설치에 잘못이 있거나 유지·보수하는 과정에 관리를 소홀히 했다면 배상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시설물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는 국가나 지자체 등이 관리하는 시설이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하자가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고의나 과실로 인한 하자가 있다면 위법성이 인정돼 손해와 인과관계를 따져 배상책임이 주어진다.

시설물 하자 피해는 민법 758조(공작물 등의 점유자, 소유자의 책임)나 국가배상법 5조(공공시설 등의 하자로 인한 책임)를 근거로 배상을 받을 수 있다.

양평2동 수해의 경우 무너진 안양천 제방은 지하철 9호선 공사 현장과 맞닿아 있으며 2001년 지하철 공사를 위해 허물었다가 올해 4월 복구됐다는 점에서 조성·복구 과정에 하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수재민들의 주장이다.

인근 주민들은 수년 간 큰 비에도 아무 피해가 없었는데 이번에 사고가 난 점을 이유로 제방을 허물었다가 다시 세우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며 '인재'(人災)라는 주장도 펴고 있다.

제방 자체에 하자가 있거나 관리상 잘못이 있다면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따라 지자체나 지하철공사, 공사업체 등이 개별 책임을 지거나 연대 책임을 질 수 있다.

그러나 민법상 일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은 '과실책임'(가해자가 과책에 의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만 책임)으로 피해자가 가해자의 과실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배상이 쉽지만은 않다.

물난리 침수 사태의 발생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손해가 있다면 어느 범위까지 배상해야 하느냐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태풍 등 천재지변에 따른 피해의 경우 국가로부터 위로금이나 지원금을 받을 수는 있지만 소송으로 넘어오면 '통념을 넘어선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배상받기 힘들다는 판결이 많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양평동 사태는 사고 원인이 순전히 천재지변에 의한 것이냐 아니면 국가나 지자체, 해당 시공사가 조금이라도 과실이 있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과실이 확인되면 배상책임을 피할 수 없겠지만 예단은 힘들다"고 말했다.

◇ '잘못 개연성' 인정된 판결 사례들 = 법원은 시설물의 설치·관리상 하자가 어느 정도 개연성(특정 사실이 특정 결과를 발생케 했다는 결과를 시인할 수 있는 정도)이 있다고 입증되면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홍수 피해로 다수의 원고가 공동소송을 낸 첫 사례로 손꼽히는 '망원동 수재' 사건의 경우 3천700여명이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내 53억여원을 배상받았다.

1998년 집중호우로 우이천이 범람해 피해를 입은 석관동 주민 189명이 서울시와 성북구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배수관을 잘못 설치한 책임이 인정돼 위자료를 200만원씩 주라는 판결이 났다.

대구지법은 2003년 배수로 누수공사 하자로 침수 피해를 입은 농민에게 대구시가 1천7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고속도로 고립'의 경우 비슷한 선례에서 도로관리상 하자가 인정된 사례가 있다.

대구지법은 2004년 폭설로 인한 교통정체로 고속도로에서 발이 묶인 이용객 110명이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도로공사가 고립구간의 소통 재개시기를 잘못 예측하고 발표한 점 등이 인정된다"며 고립 시간에 따라 30만~60만원씩 위자료를 주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자연력의 작용에 의해 하자가 발생했을 때 결함이 있는 것 자체만으로 책임이 인정되지는 않고 시설물의 구조와 주위 환경, 이용 상황 등을 종합해 엄격히 판단하기 때문에 원고가 패소하는 사례가 더 많으며 배상받기가 쉽지 않다.

또 재해로 인한 재산상 손해는 입증이 어려워 손해액이 인정돼도 일부만 인정되거나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만 인정되는 사례도 많다.

손윤하 변호사는 "재해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은 아주 복잡한 문제인데 간단히 보면 제방이나 고속도로 자체에 하자가 있었는지, 관리를 잘못했는지 등에 따라 책임 여부가 가려진다. 그러나 정확한 원인을 따져야 하기 때문에 섣불리 결론을 말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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