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뛰면 장애인들에게 그만큼 힘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빗속을 뚫고 밤길을 달린다. 체온이 떨어지면 시골길 옆에 버려져 있는 비닐을 주워 몸에 두른다. 어느새 발바닥은 마찰열로 붉게 달아올라 한발 뗄 때마다 비명이 절로 나온다.
키 163㎝, 몸무게 62㎏. 유수상(42·조일공고 수학교사) 씨는 지난 15일부터 20일까지 자그마치 537㎞를 달렸다. 부산 태종대를 출발, 휴전선 앞 임진각까지 가는 '대한민국 종단 537㎞ 울트라마라톤대회'에 참가한 것. 이 대회에 참가한 이들은 모두 94명. 대구에서 참가한 5명 중 완주한 이는 유 씨가 유일하다.
일반 마라톤 거리인 42.195㎞를 완주하는 것도 힘든 마당에 국토종단에 도전한 일이 쉽지 만은 않았을 터. 게다가 하루에 100㎞를 달리지 못하면 탈락이었으므로 참가자들은 갖은 고생을 해야 했다. 마라톤 경력 6년, 울트라마라톤 대회에 나선지 3년째인 유 씨에게도 이번 대회는 어렵기만 했다.
"100㎞마다 있는 체크 포인트에 가서야 물과 음식을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물과 간단한 음식, 의약품 등은 배낭에 챙겨 넣고 뛰는 거죠. 이번엔 날씨 탓에 고생 좀 했습니다. 비가 최대의 적이었죠."
발바닥과 발가락은 붉게 달아오르고 물집이 잡혀 걷기조차 힘들었고 실핏줄이 터져 발은 점점 부어갔다. 평소 250㎜ 신발을 신는 유 씨는 280㎜ 신발로 바꿔 신었지만 발이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다른 참가자들도 비슷한 고통을 겪었다. 대회 동안 눈을 붙인 시간도 3시간이 전부.
그가 결코 중간에 발길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대회를 앞두고 유 씨가 몸담고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마라톤동호회(지도신부 김정우) 회원들과 한 약속 때문이다. 유 씨가 1㎞를 달릴 때마다 회원들이 50원씩 적립, 장애아동들이 살고 있는 일심재활원에 보내주기로 한 것. 이 같은 뜻에 동참할 사람들은 마라톤동호회 홈페이지(www.dgcamara.com)에 의사를 표시하면 된다.
20일 오전 8시가 조금 넘어 임진각에 도착한 유 씨의 완주기록은 122시간. 수차례 울트라마라톤에 출전하면서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고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도 이런 정신을 가지길 바라는 유 씨지만 이번 완주소감은 남다르다. 260여만 원을 모아 장애아동들에게 전해줄 수 있게 됐기 때문.
"그들이 모자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들보다 조금 더 받았을 뿐이죠. 더 받았다면 그만큼 나눠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한편 매년 2천여 ㎞를 달린다는 유 씨는 동호회 회원들과 별도로 올 한해 1㎞당 100원을 적립, 연말에 어려운 이웃을 찾을 예정이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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