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이행우 作 '고향,여름밤'

고향, 여름밤

이행우

감나무 밑 살평상에 앉아

고추밭골보다 주름 깊게 패인 어머니,

손주들의 재롱에

홍두깨로 손 가벼이 밀반죽을 편다.

지친 매미소리 잠들어

젖은 솔잎 몸 사르는 모깃불은

아버지가 지니신,

시름의 장초보다 매캐하지만

고향, 여름밤이 한결 수월해진다.

여름밤의 전령사 반딧불이

꿈 많던 아내의, 옛날을 찾아주려는 듯

제 자리를 맴돌며 낮게 속삭이나

자못 무더위는 어디에서나 다르랴.

은하수만큼 길고 긴 할머니 얘기로

손주들은

아빠의 지난날을 가슴 깊이 심어

산(山)자락에 떨어진 별똥별을 찾고 있다.

이 여름, 고향에서 사흘 정도 보낼 것입니다. 그런 꿈이라도 꾸어 봅시다. 행복할 것입니다. 고향집 '감나무 밑 살평상에 앉아' 노모는 '손주들의 재롱에' 환하게 웃으시며 저녁으로 손국수를 준비하실 것입니다. 밤이 이슥해져 '지친 매미소리들도 잠들'고 매캐한 모깃불은 어느 새 어린 시절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반딧불이는 잊었던 어린 시절의 꿈을 되살려 줄 것입니다.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은하수만큼 길고 긴'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그 옛날 어린 아들에게 들려주었듯이.

여름의 고향은 우리를 동화 속으로 떠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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