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대주택사업 '파열음'…사업방향·제도개선 필요하다

저소득층을 위한 국민 임대주택 조성사업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해당 지역주민들과 지자체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데다 개발제한구역에 국민임대주택을 지으려던 정부의 계획조차 급제동이 걸렸기 때문.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업방향 및 제도개선의 재검토를 주문하고 있다. 지역주민 및 지자체의 반발을 '님비' 현상으로만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임대 주택단지의 슬럼화를 막고 주민들 피해의식을 달래줄 수 있는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것.

◆갈등의 악순환=지난달 31일 오후 북구 국우동과 도남동 일대. 주민 260여 가구 대부분이 농사를 지어 생계를 이어가던 이 마을이 최근 크게 술렁이고 있었다. 대한주택공사가 이곳 27만 5천여 평에 1만 6천400여 명을 수용하는 5천663가구의 아파트 대단지를 조성하고, 이 중 2천995가구를 국민임대주택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기 때문.

주민공람 공고를 마친 지난달 20일까지 지주 435명 가운데 405명이 반대의견을 냈다. 주민 350여 명은 국민임대주택개발 반대추진위원회까지 구성했다. 이정도 반대추진위원장은 "하루아침에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삶터를 빼앗기게 됐는데 누가 가만히 있겠느냐."며 "서민들을 위한 국민임대주택 조성이 도리어 서민들의 목줄을 죄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지난달 19일부터 오는 7일까지 주민열람 중인 달서구 진천·도원동 일대 사정도 마찬가지. 주공은 부지 23만 평, 총 4천500가구 중 2천300가구를 임대주택으로 조성할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인근주민들은 곳곳에 반대 현수막을 내걸고 서명 운동을 벌이는 등 집단 반발하고 있다.

지난 5월 2만 9천 평, 900가구의 임대주택 조성 계획에 대한 주민공람을 끝낸 동구 괴전동 일대도 주민, 지자체는 물론 이 일대에 아파트 사업을 추진하던 주택업체까지 들고일어나는 바람에 지구지정이 난항을 겪고 있다.

대구에서는 지난 2002년 국민임대주택 조성 특별법 제정 이후 4년간 국민임대주택이 1만 5천17가구가 건립됐다. 전체 임대주택 3만 5천921가구의 41%에 이르며 올 들어 달서구 진천·도원동과 북구 국우·도남동, 동구 괴전동 등 3개 지구, 8천400가구에서 건설 사업이 진행 중이다.

◆왜 반대하나=해당 지역 인근주민들은 임대주택단지가 들어서면 "주변 땅값이 떨어지고 주거환경이 악화된다."고 주장한다. 저소득층이 주로 입주하는 임대주택의 특성상 주거지역의 집단 슬럼화로 범죄 등 도시문제가 잦아지고 집값이 떨어지게 된다는 피해의식 때문.

임대주택 택지가 들어서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거세다. 주민들은 개인재산권을 이유로 최대한 시가에 상응하는 보상 또는 개발반대를 요구하는 반면 개발주체들은 법적 절차에 따른 감정가 보상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 북구 도원동 한 주민은 "토지 보상을 몇 푼 더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먹고살 생계 수단이 없어지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자체들은 사회·복지 예산지원이 필요한 저소득층이 대거 유입되는 데다 주민들의 민원까지 떠안아야 하는 점이 부담스럽다. 그러나 국민 임대주택건설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단체장의 허가없이 임대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지자체가 아무리 반대해도 별 소용이 없는 실정.

때문에 지자체들은 주민반대를 무기 삼아 건교부에 반대 의견서를 적극 제출하고 있다. 대구북구청 관계자는 "임대주택을 지은 이후에 기초생활수급자의 증가에 따른 예산 부담을 덜어주는 등 정책적 배려 없이는 지자체의 반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하자=전문가들은 국민 임대주택건설사업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목표 가구 수'라는 양적인 팽창에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임대주택의 질적 향상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최저 주거수준을 높여 주거 수준을 양호하고 인근 지역에 생태공원이나 미니 행정타운 등을 조성, 지역발전을 이룰 수 있는 주거 단지로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최근 국민 임대주택 예정지구로 발표한 경기 성남 여수지구와 고양 지축·향동지구 등 인근 주민들은 주거타운 조성으로 낙후된 지역발전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부동산통상학부 교수는 "임대주택은 차상위 이하 계층의 주거고통을 덜어준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기본적인 사회복지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도심 외곽에 유배지처럼 조성된 임대 주택은 접근성이 떨어져 서민들의 외면을 받는데다 관리를 제대로 하지않아 슬럼화되기 십상"이라며 "재건축 지역에 소형 아파트 의무 비율을 마련, 계층 간 격리를 막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지자체와 이주대상 주민들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 시스템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린벨트 지역에 임대단지가 조성될 경우 수십 년간 재산권 침해를 받아온 주민들은 또다시 희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 임재만 대구대 부동산통상학부 교수는 "공공목적으로 토지를 강제수용하는 만큼 보상시 예외 규정을 만들어 해당 지역 주민들의 부담을 줄여 주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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