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이 늘면서 신랑을 모집하고 알선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자치단체가 지원하는 보조금을 노린 결혼정보회사들이 벌이는 치열한 경쟁은 상도덕을 넘어 사기극에 가깝다.
여기에는 마을 이장, 공무원, 사회 지도층 인사들까지 동원되는가 하면 음성적인 뒷 거래까지 이뤄지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예천군의 경우 지자체가 직접 주관한 결혼도 1년이 채 안돼 3쌍이나 헤어졌다.
◇불·탈법이 만연한 국제결혼 알선=전국에 신고된 국제결혼 중매업체는 700여곳. 그러나 취재기자가 베트남 현지에서 확인한 국내 결혼정보회사 현지지사는 50~60개. 이마저도 불법영업으로 상당수 회사 대표가 수배중이거나 구속중이었다. 일부 결혼정보회사들은 결혼일정이나 스케줄 없이 신랑이 모집되면 베트남 현지 교민이나 지인들을 통해 신부를 모집한 뒤 불법적인 결혼을 추진하고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영업에 만 눈이 먼 정보회사들은 신랑모집과 결혼 성사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일부 업체는 규정에도 없는 결혼 중개 비용을 과다하게 요구, 국제결혼 가정이 신혼 살림도 채 꾸리기 전에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떠안게 하는가 하면 결혼 성사에만 급급해 한국 남성과 외국인 여성의 경제적 능력 등 신상정보를 부풀려 과대포장 하기도 한다.
이때문에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 중 일부는 생활고와 가족들로부터의 비인격적 대우 등을 견디지 못해 결국 파경을 맞고 어린 아기와 함께 '이주여성의 집' 등지를 전전하며 어려운 삶을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5월16일 예천의 모 국제결혼중개업자가 베트남 신부 엑진(19) 씨의 멱살을 잡아 끌며, 갖은 욕설을 퍼붓는 등 폭력을 행사하고 몸을 뒤져 여권과 외국인 등록증을 빼앗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유는 가출. 결혼 후유증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 결혼정보회사가 다급한 나머지 신부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귀국하려면 1천500만원을 변상하라고 협박했다는 것.
그러나 경찰 조사에서 엑진 씨는 결혼 전 남편의 선천적인 질환(한센병)을 알지 못했고, 결혼 뒤 시어머니의 감시로 감옥같은 생활을 해 왔던 것으로 드러나 결혼정보회사의 거짓 신상정보에 속아 결혼한 한 외국인 여성의 참담한 삶을 그대로 드러냈다.
또 지난해 성주군의 이모(35) 씨는 베트남 여성과 결혼 후 불만족한 결혼생활에 대한 항의로 군청 현관에 휘발유를 뿌리고 방화를 시도하다 경찰에 입건됐다.이씨는 결혼생활에 문제가 발생하자 결혼을 주선한 단체와 결혼정보업체 등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어느 하나 받아주는 사람이 없자 항의표시로 이같은 일을 저질렀다.
특히 지난해 10월 영주시 이·통장 협의회는 '노총각 장가보내기 운동본부'를 설치하고 국제결혼을 추진했다가 뒤늦게 결혼정보회사와 결탁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사업을 취소했다. 결혼정보회사가 이·통장의 명의를 빌려 추천한 사업으로 협의회는 이·통장이 추천한 신랑에게 1인당 200만 원의 결혼 경비를 지원한다고 약속했지만 결혼정보업체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지급키로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말썽을 일으켰던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는 "결혼비용 1천290만 원중 이·통장이 추천한 신랑에게는 200만원을 깎아 지원하기로 하고 사업을 추진했으나 추천을 받지 못해 사업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불미스런 사건이 이어지자 성주, 포항 등 도내 일부 자치단체는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을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지자체 보조금도 노린다=영주시와 봉화군은 실제 영농에 종사하는 만 35세 이상의 미혼남성이 국제결혼을 희망할 경우 금고이상의 형사처벌과 신체에 이상이 없다면 결혼비용으로 1인당 500만 원씩 지원하고 있다.
마을 이장과 읍·면장의 추천을 받아 자체심사기준과 현지조사를 통해 보조금 지급 대상자를 선정하며 결혼정보회사는 총각들이 직접 선택하도록 돼있다. 보조금 신청은 농촌총각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이 입국한 날로부터 1개월이내에 출입국 확인서와 보조금신청서를 자치단체에 제출하면 된다.
봉화군은 올해 농촌총각 14명을 추천 받아 적격심사를 거친 뒤 10명을 국제결혼 대상자로 선정, 7월말 현재 6명이 베트남과 몽골에서 결혼식을 마친 상태며 나머지 4명은 9~10월중 출국할 예정이다. 영주시도 지난 2월 25명의 농촌총각을 추천 받아 16명의 대상자를 선정, 현재 5명이 베트남에서 국제결혼을 마친 상태며 나머지 11명은 오는 10월중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신랑 유치에 나선 결혼정보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공무원과 결혼정보업체간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의혹도 끊이지 않고 있다. 신청자 명단을 입수한 정보회사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청자들을 찾아 다니며 회사선택을 종용하고 있다.
국제결혼을 신청한 김모(37) 씨는 "얼마나 전화가 걸려오는 지 신청서 쓴 뒤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며 "어떤 경로로 정보가 유출됐는지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A 회사의 경우 "국제결혼 보조금을 우리 회사가 만들었다. 자치단체가 밀고 있는 지정 회사로 우리 회사를 선택하지 않으면 대상자 선정이 어렵다. 결혼비용을 깎아 주겠다."는 등의 말로 협박을 하기도 했다는 것. 이에 대해 봉화군청 관계자는 "국제결혼정보업체 난립으로 특정업체를 선정할 수 없어 본인들이 직접 결혼정보회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율에 맡기고 있다."며 "잡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대책은 없나?=우선 결혼 알선업의 투명화가 시급하다. 결혼 중개업을 현행 신고제에서 등록제로 바꾸고 이주대행업은 현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꾼 뒤 엄격한 감시체계를 만들어 나가야 불·탈법 영업행위를 뿌리뽑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치단체가 보조금까지 지급하는 농촌총각 국제결혼도 엄격한 심사기준을 마련, 공개경쟁 입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모(38) 씨 등은 "회사 선택을 당사자들에게 맡기고 있지만 입찰방식과 위원회 심사 방식을 도입, 공개경쟁을 유도한다면 사후 관리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어 질높은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제결혼을 조장하는 과대광고의 철저한 단속과 함께 체계적인 이주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아울러 ▷이주여성 및 2세 혼혈자녀 관련 업무에 대한 감독 강화 ▷국제결혼 가정과 2세 자녀 현황 파악 뒤 데이터베이스화 ▷시민단체에 의한 외국인 여성의 결혼알선 과정 감시 ▷이주여성 교육·행정지원 등에 필요한 '결혼이민자 지원센터' 설립 등도 추진돼야 한다.
박용우·김경돈·마경대기자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