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뇌혈관 수술을 받은 김모(72·서울 중랑구 면목동) 할아버지는 늦은 밤 갑자기 일어나 현관문을 붙잡고 바르르 떠는 버릇이 있다. 이 할아버지는 현관문에 불이 켜지자 '불이야'라고 외치기도 한다.
이 소리에 놀란 아들이 김 씨의 방에 찾아가자 할아버지는 되레 "당신 누구야?" 라며 소리친다. 정상인들이 볼 때는 어처구니없는 일 같지만 김 씨를 부양하고 있는 아들 가족은 벌써 며칠째 밤잠을 설치고 있다. 김 씨의 증상은 언뜻 보기에 치매와 비슷하지만 이 할아버지가 병원에서 진단받은 정확한 병명은 '섬망(Delirium)'이다.
■ 섬망, 치매와 비슷하지만 완치 가능 질환
섬망은 일시적으로 매우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정신상태의 혼란을 말하는데 치매증상을 유발하거나 치매와 비슷한 소견을 보이지만 치매와 달리 완치가 가능하다. 섬망은 입원치료를 받은 70세 이상 노인환자의 30%에서 나타날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김 씨처럼 고령에 대수술을 하면 수술 후 신체리듬이 깨지고 환경이 급변하기 때문에 갑작스런 의식장애와 혼동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퇴원 후 평소와 달리 주위가 산만하거나,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느끼며, 시간과 장소를 거의 깨닫지 못해 멍한 상태로 하늘을 쳐다보거나 소리를 치는 등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인다면 섬망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전문의들에 따르면 섬망 증세가 나타나면 집중력과 지각력에 장애가 와서 기억장애, 착각, 환각, 해석 착오 , 불면증이나 악몽, 가위눌림 현상 등을 보일 수 있다.
또한 사람들과 얘기할 때 안절부절 하거나 과잉행동을 하다가도 갑자기 아무 말 없이 있기도 하며, 보통 사람보다 공포를 훨씬 많이 느끼거나 슬픈 일에 전혀 감동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 섬망의 원인, 증세만큼 다양
섬망은 전신에 병균이 감염됐을 때, 뇌에 산소공급이 잘 안 될 때, 혈액에 당분이 모자를 때, 간장이나 신장에 질환이 있을 때, 뇌세포의 각종 대사과정에 관여하는 필수 비타민인 티아민이 부족할 때 등 다양한 원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코올이나 약물에 중독됐거나, 금단현상이 나타날 때 순간적인 정신착란이 일어나는 것도 섬망의 일종이다.
일반적인 증상은 치매와 비슷해 보이지만 치매와 달리 급성으로 발병하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 치매는 후천적인 뇌세포 이상으로 발생하는 데다 점차 진행하는 2종류 이상의 인지기능 장애가 의식 저하 없이 일어나며, 증상이 서서히 나타난다는 점에서 섬망과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 원인질환 치료 후 일상의 리듬 찾아야
섬망의 치료는 일상생활의 리듬을 다시 회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섬망으로 진단되면 일단 유발요인을 없애기 위해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고 일상생활과 수면주기, 주변 환경을 적절히 조절해 줘야 한다. 서울특별시립 북부노인병원 정신과 신영민 원장은 "섬망은 치매와 구분되지만 방치하면 치매를 유발할 수 있는 만큼 유발요인을 조기에 적절히 치료하면 1, 2주내에 완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치료시기를 놓쳐 치매가 동반된 경우나 뇌의 기질적 이상을 동반한 경우에는 오랜 기간 섬망 증상이 지속되고 회복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신 원장은지적했다.
(도움말:서울특별시립 북부노인병원 정신과 신영민 원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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