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韓流) 위기론'이 서서히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영화계에 조용한 '일류(日流)'가 불고 있다.
이는 지난달 31일 개봉한 일본 블록버스터 '일본 침몰'이 박스오피스 1위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감지된다. 2004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적이 있지만 실사 영화로는 1998년 일본 대중문화개방 이후 '일본 침몰'이 처음이다. '일본 침몰'은 '왕의 남자' 흥행기록을 갱신한 대작 '괴물'의 발목을 잡은 것은 물론 '해변의 여인', '천하장사 마돈나' 등 기대작들도 가뿐히 올라섰다.
'일본침몰'은 일본에서 2천만 관객을 넘긴 블록버스터에다 반일감정을 이용한 마케팅으로 우리나라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는 점에서 특수성이 있다. 하지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유레루' 등 일본 인디영화에 대한 우리나라 관객의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어서 '일류(日流)'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개봉을 앞둔 한국영화들의 상당수가 일본 소설이나 드라마, 만화 등을 원작으로 하고 있어, 사실상 '한류의 배후는 일본'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 식어가는 한류
우리나라는 지난해 상반기 3천100만달러 어치의 영화를 일본에 수출했지만 올 상반기는 870만 달러로 그 규모가 크게 줄었다. 작품 수도 줄고 편당 가격수도 헐값으로 떨어지고 있다. 강동원의 '형사', 권상우의 '야수', 정우성 이정재의 '태풍', 최지우의 '연리지' 등이 줄줄이 일본에서 흥행에 실패했다.
이처럼 소위 '한류 스타'에 의존한 영화들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면서 한계에 봉착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대를 모았던 '괴물'도 일본에선 혹평과 함께 표절시비까지 일어나는 등 한류 대열에 동참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일본 배급사들이 선뜻 작품을 구입하지 않고 있으며 작품의 가격에도 거품이 빠지고 있다. 하반기 영화로 이병헌 주연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12월 개봉예정작 '여름이야기'가 일찌감치 400만달러의 수출계약이 된 정도에 그쳤다.
# 한류의 원작은 일본 콘텐츠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일본 콘텐츠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파이란', '올드보이', '싱글즈', '내 머릿속의 지우개', '파랑주의보' 등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해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 개봉 예정인 일본 원작 영화만 해도 10여편이 훌쩍 넘는다. 최근 개봉한 '플라이 대디'는 가네시로 가즈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일본에서 이미 영화화됐던 작품. 김아중 주연의 '미녀는 괴로워'는 스즈키 유미코의 만화가 원작이다. 그 밖에도 '어깨 너머의 연인', '반짝반짝 빛나는', '프리즌 호텔', '검은 집' 등이 일본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문근영·김주혁 주연으로 개봉을 앞둔 영화 '사랑 따윈 필요없어'는 일본의 인기 드라마를 원작으로 삼고 있으며 '바르게 살자'와 '당신의 가방모찌'는 일본 영화 '노는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와 '가마타 행진곡'을 각각 리메이크 한다.
이렇게 일본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붐을 이루는 것은 영화 '올드보이'와 '내 머릿속의 지우개' 성공이 직접적인 계기.
'올드보이'는 스치야 가론의 동명만화를 각색한 작품으로, 2천만원도 안되는 판권을 지불했지만 약 20억원으로 일본에 역수출했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는 원작을 5천만원에 사들여 영화로 만든 뒤 일본에서만 약 250억원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이 때문에 충무로에선 일본 원작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이 치열하다.
재일동포 신세대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플라이 대디'는 5,6개 영화사, 가와구치 가이지의 만화 '생존'은 무려 17개 국내 영화사가 경쟁을 벌였다고 한다. 때문에 '플라이 대디' 국내 낙찰가는 무려 2억5천만원에 달했다. 2003년 싱글즈의 원작 소설 '29세의 크리스마스' 판권료가 1천만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가파른 상승세이다.
# 일본 인디 영화 붐
일본의 소설, 만화, 드라마 등이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포장돼 나오는 것과 동시에 일본 인디영화는 영화 그 자체로 인기몰이 중이다.
지난달 전국에서 열린 일본 인디필름 페스티벌은 전국 4만명이 관람하는 기염을 토하면서 앵콜 상영까지 했다. 행사를 진행했던 대구 동성아트홀에도 많은 관객이 찾아와, 한여름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높은 좌석 점유율을 보였다. 영화 관계자들도 놀랐던 이같은 현상은 '일본영화의 소리없는 열풍'으로 불리고 있다.
고급 문화코드로 급부상되고 있는 일본 인디영화에 대한 우리나라 관객의 관심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오다기리 조 주연의 '메종 드 히미코', 사와지리 에리카 주연의 '박치기' 등 독특한 소재와 기법의 영화들이 소개되면서 시작됐다. 오다기리 조 주연의 '유레루'는 인디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국내 관객 3만명을 동원하면서 조용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다양한 소재를 다룬 수작들을 중심으로 마니아층이 형성되고 있는 이러한 현상은 또다른 종류의 일류(日流)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