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검·경 수사권조정 물건너가나…'논의 중단'

검·경찰 간 수십년 해묵은 과제인 수사권 조정 작업이 수개월째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사실상 중단됐다.

국회가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전면 중단한데 이어 두 기관 사이의 의견 조정과 정부안 마련이란 중책을 맡은 청와대도 가시적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고 당사자인 검찰과 경찰 모두 전담팀을 축소했다.

이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수사권 조정이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한 채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 조정작업 중단 = 기득권을 갖고 있어 '갑'의 위치인 검찰은 올해 초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공식 입장을 청와대에 넘긴 뒤 사실상 이 문제에서 손을 뗀 것으로 알려졌다.

전담부서인 '국가수사개혁단' 규모도 축소해 2명이었던 부부장검사급 연구관을 한 명으로 줄이는 등 인력을 감축하고 사무실 크기도 줄였다.

대검 관계자는 "지금은 사례 연구나 논리 개발 단계는 한참 지났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별도 논의나 움직임은 없으며 이미 검찰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했기 때문에 조정을 기다릴 뿐"이라고 말했다.

경찰도 입장 정리를 마무리하고 전담 배치했던 총경 2명을 1명으로 줄이는 등 수사구조개혁팀 규모를 축소하고 청와대와 국회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올 3월 이해찬 전 총리의 사퇴 이후 총리실에서 수사권 조정 업무를 넘겨받은 청와대도 겉으로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사안이 형사소송 절차의 근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문제인데다 검·경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신중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김진국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내부 논의를 통해 정부안 도출 시기와 내용 등을 종합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는 이인기, 홍미영, 김재원 의원이 지난해 대표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 3건이 계류돼 있으나 논의가 완전 중단된 상태다.

◇ 핵심 쟁점 = 경찰을 검찰과 같은 수사주체로 인정할지와 검·경 관계를 지금처럼 상명하복 관계로 유지할지 아니면 상호 협력 관계로 규정할지가 최대 쟁점이다.

현행 형사소송법 195·196조는 검사만 수사의 독자적 주체로 규정하고 사법경찰관은 검사 지휘를 받아야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검찰청법 53조는 '사법경찰관리는 범죄수사에 있어서 소관 검사가 직무상 발한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검사와 함께 사법경찰관리를 수사의 주체로 명문화하는 것까지는 수용할 수 있지만 사법경찰관리에 대한 검사의 지휘권은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폭력, 절도를 비롯한 '민생치안범죄'에 제한적 처리 권한을 경찰에 주는 대신 검사가 경찰관에 대한 직무집행정지 명령권과 교체·임용·징계 요구권 등을 통해 경찰을 통제해야 한다고 검찰은 주장한다.

반면 경찰은 형소법 개정을 통해 검·경이 대등한 수사주체로서 서로 협력하는 관계가 실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회에 제출된 3개 안 중에서는 이인기 의원 안과 홍미영 의원 안이 사법경찰관리도 수사 주체임을 명문화하고 양자 관계를 협력관계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경찰측 안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된다.

김재원 의원 안은 교통사고, 절도, 폭력 등 사건에서 경찰의 수사권을 인정하되 수사의 '주재자'인 검사의 점검·지도·보완수사 요구를 받도록 했고 검사 지휘를 따르지 않는 경찰관은 관할 지검장이 경찰공무원 징계위원회에 징계를 요구하도록 해 검찰에 유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향후 전망 = 검찰과 경찰의 입장이 평행선을 긋고 있는 데다 논의마저 중단된 상태여서 조정안 마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당초 올 4월까지 정부안을 만들어 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목표로 검·경 합의를 시도해왔지만 이미 오래 전에 시한을 넘겨버렸다.

당사자 협의를 통한 정부안 도출이 불가능하다면 국회가 중재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가을 정기국회가 예산안 중심으로 운영되는 데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청문 절차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면서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가 이 문제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수사권 조정 문제가 풀리지 않은 채 해를 넘기면 내년에는 본격적인 대선 정국에 돌입할 수 밖에 없어 논의 자체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각에선 수사권 문제가 정파 간 이해관계와 큰 상관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일단 정치권에서 논의가 시작되면 예상보다 빨리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견해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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