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엔, 그 길을, 한번쯤은
박종해
귀뚜라미 그 조그마한 것들도
잠 못 들고 울어대는데
내가 어찌 잠들 수 있겠습니까
귀뚜라미 편에 이메일을 띄웁니다.
밤을 지새우며 귀뚜라미가 문자판을 두드립니다.
"그립습니다. 그립습니다."라고
달이 구름의 속살을 비집고 나와
빙긋이 웃는군요
당신도 저 달을 보고 있나요.
가을이 깊어질수록
병도 자꾸만 깊어지는군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먼 길을
달빛이 내 그림자를 끌고 갑니다.
당신도 그 길을 한 번쯤 가 보시나요
바람처럼, 구름처럼
세월이 그 길을 지우고 있군요.
귀뚜라미도 '잠 못 들고 울어대는데', 잠으로 어찌 이 가을밤을 보내겠습니까? 그동안 우리는 '나'를 규범으로, 혹은 생존을 위해 위장해왔습니다. 그래서 '나'를 상실했었지요. 이 가을밤에는 그리운 이에게 '그립습니다 그립습니다'라는 메일을 보내며 잃어버렸던 '나'를 만나봅시다. 그러면 아름다운 날들이 살아날 것입니다. 비록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먼 길'일지라도 혹은 '바람처럼, 구름처럼/ 세월이 그 길을 지우고' 있을지라도 실망할 일은 아닙니다. 지워지는 길이기에 더욱 아름다울 수 있으니까요.
돌아갈 수 없는 먼 길을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의 아름다운 영혼을 깨우는 것입니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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