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vs 경주, 이해는 하지만 바보된 것 같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특별법은 광주를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육성하기 위해 20년간 2조 5천748억 원(국비 2조 257억 원)을 투입한다는 법이다. 이 법이 지난달 임시국회에서 통과됐을 때 지역에선 탄식과 부러움이 교차했다. 특별회계라는 것 때문에 정부 예산당국이 강력히 반대해서 9~12월 정기국회 통과조차 자신하지 못했는데 9월도 아닌 8월, 심사도 아닌 통과까지 돼버린 것이다.
경주에 30년간 3조 74억 원(국비 1조 9천969억 원)을 투입해서 세계역사문화도시로 육성하자는 내용의 세계역사문화도시특별법을 광주특별법과 함께 국회 통과시키기 위해 뛰고 있던 지역 국회의원들이 당황해한 건 불문가지다.
광주특별법이 KTX 호남선을 타 버린 데에는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의 공이 컸다.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콕 집어 광주특별법을 바로 8월 통과시켜 드리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강 대표의 행보를 충분히 이해는 한다. 대선에서 이기려면 영남을 병참기지로 삼아 호남을 공략해야 한다는 병참기지론이란 주장이 당내에선 설득력을 갖고 퍼져 있는 상황이다. 지난 7월 대표로 선출된 이래 지금껏 강 대표가 대구에는 한 번도 오지 않았으나 광주에는 공식 3번, 비공식 2번 해서 모두 5번이나 찾아간 것도 이런 차원일 테다.
그러나 왠지 대구·경북만 순진한 건 아니냐는 생각은 든다. 한나라당 행태가 잔칫날 잘 먹여줄 테니 그때까지는 참아달라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는 것 같아서다.
대구 vs 부산, 어이없고 시시한.
국립과학관은 영남에 하나, 호남에 하나 들어서게 돼 있다. 영남에선 대구가, 호남에선 광주가 선정돼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이다. 부산은 예비타당성 심사에서 탈락했었다. 그런데 지난달 부산이 다시 예타 심사 대상으로 추가됐다. 정부는 대구과학관 건립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고 하지만 한정된 예산으로 진행하는 게 정부 사업이므로 사업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단위 사업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줄어든다고 봐야 한다.
부산이 예타 심사에서 추가된 것은 부산시민들의 강력한 요청이 있은데다 국회 관련 상임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부산 모 국회의원이 과학기술부 장관과 학교 동문으로 친하다는 점 등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무성하다.
영남지역 국립과학관 유치의 단꿈에 젖어 있던 대구는 난데없이 뒷통수를 맞은 꼴이다. 명분이나 논리 없이 절차를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건지, 너무 내놓고 특정 지역을 봐주려는 건 아닌지 싶다. 그래서 역시 이 정부 사람들은 시시하다는 생각이 어이없다는 느낌과 함께 든다.
평창 vs 대구, 답답하고 외로운.
강원도 평창은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대구는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를 위해 뛰고 있다. 그런데 평창을 위해선 국회에까지 지원특위가 구성되는 등 국가적 지원 분위기이지만, 대구를 위해선 국회 특위조차 없다.
한나라당은 내년 대선에서의 강원도 표를 의식해 대구 지원에는 꿀먹은 벙어리다. 여당도 이 지역에서 표를 받은 만큼 하는 것 같다. 도로 사업비 얼마 더 주며 생색은 내지만 정말 큰 건은 이런저런 핑계로 물먹이려는 것 아닌가 싶다.
심지어 지역의 한 핵심 여권 인사 측은 비슷한 시기에 세계대회를 둘씩이나 유치하려다간 공멸하기 좋다, 대구가 안 되는 일에 왜 뒤늦게 뛰어들었느냐고 되려 힐난조로 반문하고 다닌다. 강원도 출신인 여권의 또 다른 핵심 인사가 평창을 위해 맹렬히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동냥은 안줄망정 쪽박까지 깨려는 거냐는 의구심이 생기는 대목이다.
최근 지역 현안들이 겪는 우여곡절을 돌아보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이 너무 오락가락한다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 논리가 무엇보다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참 잘못됐고 한탄스러운 일인데, 우리 지역이 놓인 정치적 이해관계를 살펴보면 곤혹스럽기까지하다.
어쩌다가 우리는 정부 여당한테는 산토끼이고 한나라당한테는 집토끼가 된 꼴인데, 정부 여당은 집토끼라도 잘 보살피자는 생각이고 한나라당은 집토끼는 잡아두었으니 산토끼 잡으러 나가자는 자세를 갖고 있는, 그런 정치적 이해관계에 빠져 있는 신세 아닌가?
이상훈 정치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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