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데이' 마케팅

서양의 '밸런타인 데이'(2월 14일) 풍속이 처음 우리 사회에 흘러들어왔을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 선물을 하는 것을 두고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서양 풍습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며 비판하는 분위기였다. 초콜릿을 그럴듯하게 포장만 하여 몇 배 비싼 값에 파는 업계의 약삭빠른 상혼에 따가운 눈총이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밸런타인 데이의 열기는 높아만 갔다. 남성이 여성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화이트 데이도 등장했다. 사람들은 점점 이 런 것에 재미를 느꼈다. 출처 불명의 유행어 시리즈처럼 누가 만든 것인지 알 수 없는 온갖 '데이'들이 속출했다. 1월 1일 라이스 데이(밥 많이 먹는 날)부터 12월 22일 데모데이(변장을 하고 연인끼리 놀래키는 날)까지 줄잡아 40~50개쯤 된다.

○…그 중엔 무덤덤한 일상에 상큼한 재미를 불어넣는 것들도 있다. 씽데이(1월 19일,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는 날), 블랙데이(4월 14일, 외로움을 달래며 검정색 옷을 입고 자장면 먹고 블랙 커피 마시는 날), 싸대기 데이(11월 3일, 싸대기를 돌려맞으며 속죄하는 날), 통화데이(10월 22일, 아무나 붙잡고 전화하는 날)…. 또 클로버 데이(4월 4일, 네잎 클로버 선물하는 날), 애플 데이(10월 24일, 사과하는 날) 같은 의미를 되새기는 날도 있다. 그런가 하면 키스 데이(6월 14일), 허그 데이(12월 14일) 같은 엉큼한(?) 날도 있다.

○…그런데 이같은 '데이' 신풍속이 갈수록 도를 넘는 '데이 마케팅'으로 변질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업계의 마구잡이식 상혼 탓이다. 1990년대 중반 여학생들이 날씬해지기를 기원하며 11월 11일에 빼빼로 과자를 주고 받은 데서 시작된 빼빼로 데이는 발상이 깜찍해 큰 호응을 얻었다. 평범한 과자 빼빼로는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됐다.

○…이후 온갖 '데이'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삼겹살데이(3월 3일), 갈비데이(3월 13일), 구구데이(9월 9일), 칸쵸데이&초코파이데이(10월 10일), 와인데이(10월 14일), 에이스데이(10월 30일), 제크데이(11월 12일), 오렌지데이(11월 14일) 등 10월 31일엔 서양 명절인 '할로윈 데이' 마케팅이 벌어졌고, 한 여성 내의업체는 작년부터 11월 8일을 '브래지어 데이'로 정했다. 이러다간 일년 365일 모두가 '~데이'가 되는 건 아닌지?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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