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얼굴없는 천사, 세상에 온정을 퍼뜨리다

대구시 동구 자유재활원 장애인들과 자원봉사자 450여 명은 올 여름 경남 고성으로 여름캠프를 다녀오면서 '가슴이 찡한 경험'을 했다.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름도 밝히지 않은 40대 여성이 성금 70만 원을 기탁한 것.

"화장실에 가기 위해 휴게소에 들렀는데 중년의 여성 한 분이 다가오더니 장애인들을 위해 음료수라도 사줬으면 하는데 괜찮으냐고 조심스럽게 묻더군요. 가능하다고 했더니 바로 지갑에서 10만원권 수표 7장을 꺼내 주었어요." 재활원 직원들이 영수증을 끊어드리겠다고 하자 이 여성은 "필요없다."며 "장애인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밝은 모습에 감동받아 성금을 내게 됐다."고만 했다. 김흥식 사무국장은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차를 타고 떠나가는 그 분의 뒷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며 "돌아오는 길에 재활원 식구들의 얼굴에 오랜 시간 웃음꽃이 피었다."고 말했다.

자유재활원에 성금을 건넨 40대 여성처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선행을 실천하는 '얼굴없는 천사들'이 겨울 추위를 녹이고 있다.

익명으로 사회복지시설에 후원금과 생활필수품을 전달하는가 하면 구청으로부터 홀몸노인과 소년소녀가장을 소개받아 남 모르게 온정을 전하는 선행도 꾸준히 확산되는 추세다.

사흘 전 대구시 중구의 무료급식소 '요셉의 집'에는 40kg 쌀 한포대가 전달됐다. 허름한 차림새에 중고승용차를 몰고 온 50대 남성이 직접 지은 쌀이라며 트렁크에서 내려놓고 간 것. 급식소 관계자들이 이름이라도 알려달라고 하자 그는 "정성들여 농사를 지은 쌀을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을 뿐"이라며 신분을 알리지 않은채 황급히 급식소를 떠났다. 요셉의 집에는 이처럼 이름을 밝히지 않고 쌀이나 과일 등을 가져다주는 숨은 천사들이 여러 명 있다.

대구 각 구·군청에서 소개받은 홀몸노인과 소년소녀가장에게 후원금이나 생필품을 직접 전달하는 숨은 독지가들도 적지 않다. 달서구청의 경우 얼마전 신분을 밝히지 않은 한 여성이 1천만 원을 기탁, 구청이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 5명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장학금을 전달받은 한 학생이 고마움의 편지를 쓰기 위해 이 기탁자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으나 구청은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기탁자 본인이 한사코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달서구청 주민생활지원과 한 공무원은 "구청으로부터 소년소녀가장이나 홀몸노인을 소개받아 익명으로 성금이나 물품을 전달하는 이름없는 선행자가 한달 2~3명에 이른다."고 했다.

해마다 대구·경북에서 1억 원이 넘는 성금이 걷히는 구세군 자선냄비 역시 얼굴없는 천사들의 선행으로 갈수록 그 열기를 더하고 있다. 또 최근 이름을 밝히지 않고 수술비 2천만 원을 보내오는 등 매일신문 이웃사랑에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들의 선행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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