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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이 흐르는 풍경) 꿀밤 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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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어깨가 뜨락에 볏섬으로 쌓이고 산비탈 밭 고춧대 서리 맞고 줄지어 들어와 마당가에 퍼질러 앉는 날이면, 짚가리까지 내려온 하늘 속을 들락거리며 숨바꼭질에 정신이 없는 내 머리통을, 할머니는 또 용케도 찾아내어 가는 장대 들려 앞산 길 지팡이로 삼으셨지요.

보리 씨앗 꽁꽁 물고 돌아누운 논 자락에 늦가을은 여윈 햇살로 글썽이고, 걸음걸음 무너져 내리는 논두렁에서 할머니는 마른 풀잎을 쓸고 가는 바람소리로 말씀하셨지요.

"앞산의 니 하래비 올 꿀밤 농사는 어떵강 모르겠다아……."

참 졸참나무도 많았지요.

잔칫날, 펄럭이는 차일 아래 시끌벅적하게 신랑 신부 어르며 모여선 동네 사람들처럼, 빙 둘러선 참나무 숲에 들어서면 가지마다 흥건히 촛불이 타오르고, 나부끼는 불꽃 사이로 하늘나라 사람들의 맨발이 보이기도 했었지요.

"니는 꿀밤이나 줍거라."

숨을 몰아쉰 할머니가 장대로 졸참나무 가지를 차라락차라락 내려칠 때마다 타오르던 불꽃은 훨훨 허공을 맴돌아 흩어지고, 출렁출렁 넘치는 하늘 물길과 함께 좌르르르 지상으로 쏟아지던 꿀밤, 꿀밤들.

풀 섶으로 돌 틈으로 또르르르 달아나는 꿀밤을 따라 신나게 쫓아다니는 동안 짧은 가을 해는 설핏 기울고, 지난여름에 놓친 장수하늘소 생각이 나 참나무 둥치에 난 구멍을 찾느라 잠깐 한눈팔다 내 정수리에 떨어지는 꿀밤에 깜짝 놀라 호들갑을 떨면,

"니 하래비가 이 할미 말 잘 안 듣는다고 꿀밤을 주는 기라. 낄낄낄…."

빠진 앞니 사이로 낄낄낄 웃음을 흘리시던 할머니는 어느새 산그늘에 허리까지 묻혀 자꾸만 허공을 두드리기도 했었지요.

서둘러 하산하는 길에는 마른 풀잎이 무성하고, 쫓아오는 땅거미에 고무신 뒤축이 자꾸 벗겨져 애를 쓰시더니 어느 해부터인가 아예 산에서 내려오시지 않고 할아버지와 함께 꿀밤농사를 지으시는 할머니. 수십 년 세월을 건너 이제 내가 멀리 떠나간 자식 놈들 안부를 궁금해 할 때마다 문득 등 뒤를 다가와 바람소리를 풀어놓습니다.

"아비야, 제멋대로 멀리 달아나는 놈일랑 그냥 굴러가 제자리 찾아 뿌리내리도록 놓아두거라…."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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