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탄광촌이었던 어릴 적 고향

내가 태어나서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은 광산촌인 문경시 가은읍이다.

석탄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인구 2만이 넘는 거리는 생기가 돌았고 주머니는 두둑했었다. 그러나 석탄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폐광설이 심심찮게 나돌자 인구가 하나둘씩 줄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석공(石公)이 폐광을 결정짓자 썰물같이 빠져나간 인구가 전체인구의 반을 넘었다.

내가 결혼을 한 뒤에 발걸음한 친정동네는 죽은 듯이 엎드려 있는 폐가와 곳곳에 산처럼 쌓인 시커먼 폐탄 더미로 인해 가슴은 찢어질 듯 아리고 아팠다. 가정연료가 연탄에서 가스와 기름으로 바뀌면서 사회에 지각변동이 생겼고 내 친정동네도 서서히 침몰했다.

고공 행진하는 유가는 석공 산하에 남아있는 광산이 별로 많지 않은 데 대한 불안감을 한층 더 고조시켰다. 그러나 연탄을 사용하는 인구가 급격히 줄면 줄수록 석탄산업도 막을 내려야 할 시점이 목전에 닿았다는 위기감은 기우에 그쳤다. 치솟는 기름값을 감당하기엔 서민들의 주머니는 얇고도 얇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부터인가 기름보일러에서 연탄보일러로 교체하는 가정이 늘어났고 소규모 가게에서도 함석 연통이 길게 가게 밖으로 목을 빼는 모습이 이젠 낯설지도 않고 보기만 해도 훈기가 돌았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행여 궁색하게 보일까봐 비싼 줄 알면서도 편리함과 남의 눈을 의식한 나머지 가스나 기름 난로를 가게 복판에 세워놓고 계기판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기름은 줄어들고 가슴은 졸아들어 춥기만 했던 겨울을 이제는 기름값의 10%도 채 안 되는 연탄으로 바꾸면서 접혔던 가슴도 서서히 펴지기 시작했다.

번거롭고 귀찮아도 실(失)보다는 득(得)이 많은 연탄난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현주소이다. 이런 속도라면 머지않아 석탄산업도 다시 호황을 누리지 않을까 하는 내 기대는 희망사항에 그칠지 몰라도 예전처럼 생기 넘치는 친정거리를 한 번 더 보고 싶어진다.

이영숙(경북 영주시 휴전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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