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천연물 신약에 거는 희망

우리 속담에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있는데, 그 본연의 의미와는 다르겠지만, 병을 치료하는 수단으로 약을 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병이 유전적인 소양이나 생리적인 불균형 상태 혹은 병원균의 감염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일어날 수 있다면, 약(의약품)은 그 병을 치료하는 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페니실린이 꿈의 항생제라고 여겨지던 때, 눈 씻고 찾아봐도 약을 구하기 힘들었던 우리네 어린 시절에는 피가 나면 쑥을 갈아 지혈제로 사용하고, 통증이 있을 때는 버드나무 잎사귀를 씹어 먹었고, 감기에 걸리면 고춧가루를 막걸리에 타 마신 후 두툼한 이불 속에서 땀을 흘리던 기억이 난다.

과거의 약이란 것은 자연상태에 존재하는 생물이나 광물 등을 소재로 민간에 구전되거나, 한의학적으로 통용되는 처방전을 기초로 해 만들어진 것으로, 이를 현대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넓은 의미의 천연물 신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의약품 또는 전문의약품의 대부분은 천연물질에서 약효가 인정된 단일 성분만을 분리한 후 이를 화학적으로 합성해 개발한 것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그 빠른 약효와 간편성으로 인해 2차 세계대전 이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과거 전통의약 시장을 초토화 시킨 바 있다.

이는 1940년대 이전,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90% 이상을 천연물질에 의존하고 유기합성 의약품이래야 10% 미만에 지나지 않던 것이 1980년대 중반에는 천연물질의 비중이 약 25%로 감소한 데 비해 유기합성 의약품이 75% 가량을 점유하였다는 자료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그 시절에 버드나무 잎사귀는 우리들의 뇌리에서 이미 사라져 버리고, 아스피린이 당당하게 자리했으며, 최근에는 진통제라면 타이레놀·게보린 등이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실정이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천연물질을 기반으로 한 의약품 시장이 급격히 성장해 이미 65% 가량의 시장 점유율을 회복한 반면, 유기합성 물질이 35% 정도로 떨어지고 있는 것은 천연물이 가지고 있는 안전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천연물질에 대한 인식변화가 이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세계시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필름 시장을 150년 동안 장악하던 Agfa가 디지털 물결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 댓가로 3년 동안의 누적 적자로 인해 사라져 버린 예와, 필름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Kodak 역시 디지털에 밀려 작년 한 해 동안 1조 원 이상의 적자를 보고, 사업을 매각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미래에 대한 예측이 기업의 생존과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가를 새삼 느낀다.

요즈음 우리에게 화두처럼 따라다니는 것 중에 한미 FTA, 특히 의약품 분과에 대한 체결이 이루어질 경우를 생각하면 머리가 혼란스럽다 못해 두통마저 느끼게 된다. FTA 자체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제약산업에 미칠 파장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의 파괴력을 발휘 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제약업계의 70% 이상이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무기력하게 지켜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준비가 미비한 현 상황에서 의약품 관련 FTA가 체결될 경우, 발생되는 문제의 책임 소재가 정부 측에 있는지, 그 동안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업계에 있는지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 가에 중지를 모으는 것이다. 국내의 대형 제약회사에서 그 해결책으로 제네릭 제품(특허가 만료된 신약의 복제품)으로 사업의 방향을 바꾸어나가는 것을 보며, 그것이 일시적인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은 들지만, 조금 먼 미래를 바라본다면 지금이라도 천연물 신약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법이 제정되었으나, 국가적인 지원이나 당사자들의 노력이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라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런 가운데도 동아제약·SK제약·유한양행·광동제약 등 제약업체들이 천연물 신약을 개발해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으로까지 영역을 넓히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며, 관련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

손성호(동양대 생명화학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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