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 대하소설 혼불은 우리 민족사에 대한 이야기다. 만약 문화적 사실이 한 민족을 규정할 수 있다면 이 책은 한국인에 대한 규정전집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작가가 역사를 '외눈'으로 보는 점은 아쉽다. 최명희의 정치적 역사에 대한 인식은 지역적 편견과 분노로 가득하다.
혼불에는 여러 세시풍속이 등장한다. 인간의 탄생과 결혼과 죽음 의식 등에 대한 묘사는 우리민족 문화의 면모를 유감 없이 보여준다. 특히 정월 대보름날 달맞이하는 사람들 이야기는 우리민족이 얼마나 달과 친밀한 관계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신비로운 달에 날줄을 맞추어 일어나는 몸의 흐름이라 이를 월경이라 하며 그 이치가 조금'사리의 바닷물과 꼭 같아서 초조'홍조라 하는가. 이 정혈은 생명의 비밀이었다. 쏟지 않고 소중하게 모두면 그 피 속에서 한 목숨이 돋아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을 강력하게 흡인하여 끌어내 쏟거나, 가만히 몸 속에 머물러 생명으로 어리게 하는 것은 오직 음의 어미, 달의 숨결이었다. 그래서 아들 낳기를 간절히 원하는 여인들은 몇 날 며칠 공을 들여 목욕재계하고 더러운 것을 피하며 마음을 정하게 하여 초열흘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그 달 아래 서서 흡월정(吸月精)을 하였다. 한낱 인간의 몸 속으로 저 우주의 광명인 달의 심오 신묘한 정기를 그대로 빨아들인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리.'
최명희는 책에서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너나없이 그 해 들어 처음으로 동산에 떠오르는 둥근 달을 보고 농사를 점쳤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랬다. 요즘도 대보름이면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은 많다.
설을 지나고 대보름 달을 보며, '혼불'의 등장인물들은 한마디씩 한다. 대보름 달에 관한 인물들의 독백이지만, 바로 우리민족이 대보름 달을 보는 인식을 담고 있다.
'대보름 달빛이 희면 그 해에는 비가 많이 온다. 황토같이 붉은 달이 뜨면 한발이 심하다. 달빛이 깨끗하고 맑으면 풍년이 든다. 안개 낀 듯 부옇게 달빛이 흐리면 흉년이 든다. 보름날 비가 오면 안 좋은 일 생기고 흉년 든다. 설은 질고 보름은 맑아야 좋다.' 등등.
'혼불'의 춘복이가 정월 대보름 달 아래 서서 입을 크게 벌리고 정수리에서 어깨뼈와 가슴팍, 그리고 단전과 손가락 발가락 끝까지 터질 만큼 달빛을 들이키는 모습은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
조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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