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 시조산책-김제현 作 '몸에게'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몸에게

김제현

안다

안다

다리가 저리도록 기다리게 한 일

지쳐 쓰러진 네게 쓴 알약만 먹인 일 다 안다

오로지 곧은 뼈 하나로

견디어 왔음을

미안하다, 어두운 빗길에 한 짐 산을 지우고

사랑에 빠져 사상에 빠져

무릎을 꿇게 한 일

쑥국새, 동박새 울음까지 지운 일 미안하다

힘들어하는 네 모습 더는 볼 수가 없구나

너는 본시 自遊(자유)의 몸이었나니 어디든 가거라

가다가 더 갈 데가 없거든 하늘로 가거라

뒤돌아보지 말고

군색하거나 쫍친 구석이라곤 없는, 확 풀린 가락. 활달하다 못해 출렁거리는 시상의 전개가 미간을 잡아당깁니다. 이런 변화의 율격에서 전통 시가 형식에 드리운 퇴영의 그늘을 찾기는 어렵지요. 시조는 정형률이기 전에 '인간율'입니다.

몸은 곧 생명이거니,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런 몸에 바치는 한 편의 참회록이 처연하게 행간을 이끕니다. 주저 없는 직설 화법의 힘. 다리가 저리도록 기다리게 한 일, 지쳐 쓰러졌을 때 쓴 알약만 먹인 일, 어두운 빗길에 한 짐 산을 지운 일―세속에 던져진 몸은 늘 이렇듯 가혹한 고통으로 삶을 기억합니다. '안다'와 '미안하다' 사이의 낙차. 미묘하게 뒤섞인 긍정과 회한의 감정이 의외로운 정서적 파장을 낳습니다.

본디 自遊(자유)의 존재인 몸이 좇는 바는 떠돎이요, 그 떠돎의 미학인 것. 어디라 매인 데도 거칠 데도 없는 몸이 끝내 가 닿을 곳은 영원의 미지인 하늘 뿐. 비록 여위고 지친 몸일망정 더 갈 데가 없으면 가야지요. 뒤돌아보지 말고!

박기섭(시조시인)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근 쿠팡 대표와의 식사와 관련해 SNS에서 70만원의 식사비에 대해 해명하며 공개 일정이라고 주장했다. 박수영 ...
카카오는 카카오톡 친구탭을 업데이트하여 친구 목록을 기본 화면으로 복원하고, 다양한 기능 개선을 진행했다. 부동산 시장은 2025년 새 정부 출...
최근 개그우먼 박나래가 방송 활동을 중단한 가운데, 그녀의 음주 습관이 언급된 과거 방송이 재조명되며 논란이 일고 있다. 박나래는 과거 방송에서...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