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대학시절의 어느 한때는 걸핏하면 휴교령이 내려졌었다. 삼십분이나 걸어서 학교에 당도하면 휴교령이 내려진 팻말이 서글프게 발길을 가로막았다. 비록 대학생이 되었지만 미팅에 나가서도 고등학생 취급을 받기 일쑤였던 나는 성장이 늦은 소심한 어린 처녀였던 탓에 당시의 분위기에 겁을 집어먹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때 자취를 하던 집엔 나 말고도 세 명의 친구가 좁다란 공간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방에 두 명씩 기거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윗방, 아랫방이라고 구분해서 불렀는데 윗방이 훨씬 더 컸고 그 방엔 커다란 창문과 몇 사람이 걸터앉기에 부족함이 없는 넓은 창틀이 있었다. 우리들은 같은 동기생이었고 우연히도 같은 집을 구하게 되어서 그때부터 각별한 친구가 되었다.
휴교령이 내려진 날엔 무서움에 떨면서 시국에 관한 얘기들을 떨리는 목소리로 건네기도 했지만 우리들은 금방 그것들에 관해 무심해져선 창틀에 걸터앉아 땅거미가 내릴 때까지 노래를 부르곤 했다. 서로에게 어깨를 기대고 노래를 부를 때면 그 시절의 암담한 분위기도 절망도 다 잊은 채 그저 편안하고 즐겁기만 했다.
'동그라미 그리려다'로 시작해서 '길가에 앉아서', '밤배' 등 주로 조용한 노래들을 나지막이 부르다보면 어느새 어둠이 소리없이 잦아들고 담장 밖 가로등이 우리들의 얼굴을 부드럽게 비추이고 있었다.
지금도 그때 불렀던 노래가 수시로 귓가에 차 오르곤 한다.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추억 속에 자리 잡은 그 시절이 몹시도 그립다. 다시 한 번 친구들과 어깨를 기대고 창틀에 나란히 걸터앉아 박인희의'끝이 없는 길'을 밤새도록 불러보고 싶다.
박미숙(대구시 달서구 도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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