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07 농촌체험] ④포항 메뚜기 마을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어른은 동심체험·자녀는 인생체험

"노란 꽃은 복수초입니다. 꽃말은 '슬픈 추억'이지요. 요건 원추리입니다. 지금은 볼품없지만 여름에 아주 예쁜 꽃이 핍니다. 저건 로즈마리라는 허브인데 아빠들 약주 드실 때 잎을 넣어 마시면 좋답니다."

뇌성산(213m) 자락 비탈에 자리 잡은 분재 비닐하우스. 황보찬(47) 메뚜기마을 사무국장의 설명을 듣는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난다. 먼 길을 달려온 터라 피곤할 법도 한데 솔 향기 가득한 자연이 마음마저 평화롭게 하는가 보다.

욕심이 과한 탓일까. 설명들은 대로 화분 여기저기 꽃들을 심어보지만 작품다운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여백의 미'는커녕 '무성한 잡초밭'이 되곤 만다. 하지만 어떠랴. 첫 술에 배 부를 수는 없는 법. 흙 묻은 손, 자연을 느끼는 손길은 아름답기만 하다.

산채비빔밥으로 요기를 한 뒤 마을을 굽어보는 광남서원으로 향한다. 단종을 보좌하다 1453년 계유정란 때 수양대군에게 살해된 충정공 황보 인을 기리기 위해 1791년 지방 유림과 후손들이 세운 곳이다.

"저희 마을은 영천 황보씨 집성촌입니다. 영의정을 지내시던 황보 인 할아버지께서 멸문을 피하기 위해 여종에게 손자를 맡기셨는데 그 여종이 한양에서 땅끝인 이곳에 숨어들었다고 합니다."

포항에서 현직 교사로 있는 황보태권(60) 씨의 마을 유래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모두들 먹을 갈고 화선지를 받아든다.하지만 서예를 하는 건지 그림을 그리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지켜보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대견하기만 한가보다. 충절을 목숨보다 중하게 여기던 선비정신이 깃든 곳에서 우리 전통을 배운다는 것은 잊지못할 추억이 아닐까.

다시 찾은 마을회관에는 윷판이 한창이다. 마을 할머니들이 두 패로 나뉘어 열을 올린다. "윷이야, 모야" 옆에서 구경하는 이의 어깨도 저절로 들썩인다. 이게 바로 사람 사는 냄새다. 순박한 농심이다.

모닥불 속에서 감자와 고구마가 익는 동안 한바탕 신명나는 사물놀이가 벌어진다. 제 덩치만한 큰 북을 매느라 낑낑대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다. 전날 내린 비로 젖은 흙에 신발이며 옷을 버려도 아랑곳없다. "그래도 제법 눈썰미들은 있네. 처음 해보는 것치고는 잘 하는데. 하하하." 촌로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핀다. 산촌의 밤은 즐겁다.

이튿날 아침, 부지런한 체험객들이 새벽부터 부산을 떤다. 동해 일출을 보러 가는 길이다. 산중턱에 오르니 벌써 숲 너머로 붉은 기운이 비친다. 발걸음이 바빠지고 산 정상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수평선에서 보는 그것과 또다른 감흥이 있다.

들판에는 봄비가 데리고 온 귀여운 새싹들이 가득하다. 경운기를 타고 가며 맞는 봄바람이 싱그럽다. 모두들 쪼구려 앉아 냉이며 쑥이며 시금치를 캐느라 정신이 없다. "자연을 가까이한다는 게 이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난생 처음 해보지만 너무 재미있네요."

등대박물관을 들른 뒤 돌아오는 길, 모두의 마음이 여유롭다. "아빠, 소 먹이 주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우리 다음에 또 와요." "그래, 그러자꾸나. 농촌이 TV보다 훨씬 재미있지?"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근 쿠팡 대표와의 식사와 관련해 SNS에서 70만원의 식사비에 대해 해명하며 공개 일정이라고 주장했다. 박수영 ...
카카오는 카카오톡 친구탭을 업데이트하여 친구 목록을 기본 화면으로 복원하고, 다양한 기능 개선을 진행했다. 부동산 시장은 2025년 새 정부 출...
최근 개그우먼 박나래가 방송 활동을 중단한 가운데, 그녀의 음주 습관이 언급된 과거 방송이 재조명되며 논란이 일고 있다. 박나래는 과거 방송에서...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