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이후, 민족운동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사회주의 경향이 출현하고, 민족주의와 대립이 심화되면서 조직 화가 요구됐다. 또한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의 물결은 식민지 조선에도 파도처럼 밀려와 지식인들에게 민족독립운동의 한 이념 무기로 자리잡게 됐다.
1925년 4월 17일 서울에서 조선공산당이 결성됐다. 1923년 블라디보스토크 소재 코르뷰로(고려국)에서 잠입한 김재봉과 김약수 등이 포함된 화요회를 중심으로 서울에서 결성, 당 책임비서에는 김재봉이 임명됐다. 이때부터 국내 공산주의운동은 코민테른의 지도하에 들어갔고, 조선공산당을 1국1당 원칙의 코민테른 한국지부로 승인했다.
화요회, 북풍회계가 중심이 돼 서울계가 배제됐고 뒤이어 조직된 산하 청년단체인 고려공산 청년회(책임비서 박헌영)도 화요계 중심으로 이루어져 통일성에 문제를 남겼다.
조선공산당은 강령은 채택하지 못했으나 총 12장으로 된 당 규약을 정했다. 당의 최고 기관은 당 대회이며 중앙 집행 위원은 당 대회에서 선거되고 당의 기본 조직은 세포로 하고 당원은 정 당원, 후보 당원으로 구성했다. 국외조직으로는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책임비서 조봉암)을 두게 된다.
▶ 1995년 4·19 묘지, 국립묘지로 승격 ▶ 1981년 일본-북한 간 직통전화 개통
정보관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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