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보리암에서
김 원 각
소원 따위는 없고
빈 하늘에 부끄럽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그리움 되지 못한 몸
여기 와 무슨 기도냐
별 아래 그냥 취해 잤다
그곳은 바다도 섬도 다 '남해'입니다. 바다가 곧 섬이요 섬이 곧 바다라. 海島不二(해도불이)의 진리가 절묘하게 실현되는 곳이지요. 그런 곳에 기도처인 보리암이 깃들인 것이 우연이기만 할까요. 굳이 거기까지 가서 '무슨 기도'라니, 참 지독한 역설이로군요. 애당초 소원 따위가 없는데 빌 일이 따로 있을 리 있나요. 퉁명스레 툭툭 내뱉는 어투가 외려 탈속의 느낌을 강하게 풍깁니다. 그것이 시 문맥 속에 옹이를 맺기도 하고요.
'빈 하늘에 부끄럽다.'는 거의 자탄에 가깝습니다. 한 세상 건너면서 누구한테도 그리운 존재가 되지 못했으니…. 예서 짐짓 끊어 버린 인연에 대한 아쉬움을 읽는다면, 생각의 물길은 자연스레 세속 쪽으로 흘러 들기 마련입니다.
'별 아래 그냥 취해 잤다.'는 마지막 구절은 기도를 넘어선 기도입니다. 술이든 풍경이든, 그도 저도 아닌 잠이든, 무엇에 취했느냐는 중요치 않습니다. 다만 어떡하면 그저 취한 듯이 저 자연 속에 녹아 드느냐 하는 것. 몰아의 머리맡, 찬 물그릇이 보일 듯 말 듯.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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