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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동네' 까만 풍경 까맣게 잊었네…삼척 도계 탄광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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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계는 대표적인 탄광촌이다. 그 많던 탄광이 문들 닫았지만 아직 석탄공사 등 2곳의 광업소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 도계광업소도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도계는 대표적인 탄광촌이다. 그 많던 탄광이 문들 닫았지만 아직 석탄공사 등 2곳의 광업소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 도계광업소도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탄가루 휘날리는 시커먼 탄광촌을 예전엔 '까막동네'라고 불렀다. 까막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막장인생'이라고 불렀다.

지난 1990년 박광수 감독의 두 번째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은 내리막길로 접어든 탄광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석탄에서 석유로 에너지정책이 바뀌면서 사양산업이 된 석탄산업. 정부는 탄광을 폐광시켰다. 탄광업자는 보상금을 받았지만 탄광을 생계로 삼았던 막장인생들은 대책이 없었다. 그곳에 온 다방레지 '심혜진'과 시골깡패 '박중훈', 도망친 운동권 학생 문성근, 그들 역시 막장인생과 다를 바 없었다.

사북과 황지, 고한, 태백, 도계 등은 강원도의 대표적인 탄광촌이었다. 삼척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38번 국도변에 도계읍이 있다. 탄광경기가 좋았을 때 도계는 읍으로 승격했다.

새로 건설된 국도를 벗어나 도계읍에 들어서자 예전 탄광촌의 모습은 흔적도 없다. 새로 난 길에 2층으로 번듯하게 지어 군청같이 으리으리한 읍사무소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때 2만여 명이 북적거렸던 '까막동네'는 어디로 갔을까.

옛 도로를 따라 태백선 철길을 가로질러 언덕 위로 아직 옛모습이 남아있는 집들이 있다. 두 사람이 지나치면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좁은 골목길. 그 끝에 석탄공사 도계광업소가 있다.

탄광은 을씨년스럽다. 10년 전만해도 3천 명이나 되던 광부는 이제 800여 명으로 줄었다. 인근의 경동탄좌는 이보다 많은 1천여 명. 탄가루가 묻어서인지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 사무실에서 검탄원(檢炭員)으로 일한 지 10여 년 됐다는 그나마 젊은 광부가 반갑게 맞아준다. '뭐 볼 게 있다고 탄광에 찾아왔느냐.'는 표정이다. 교대시간이 지난 모양이다. 오후 3시반에 오후반이 교대했다. 그들은 8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지상에 올라올 수 있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2교대만 한다. 겨울에도 갱속은 섭씨 35도가 넘는 찜통이다. 다시 까막동네로 내려왔더니 골목 곳곳에 연탄재가 쌓여있다. 아직도 탄광촌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니까 연탄을 때는 것 같다. '석공'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한 사택도 점점 비어가고 있다.

이제 도계는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15일 국비와 민자 등 886억 원을 들여 조성한 '블랙밸리골프장'이 개장했다. 정부의 탄광지역 개발사업비를 지원받아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개발한 대중골프장이다. 탄광지역은 변하고 있다. 도계를 지날 때 스쳐지나지 말고 도계읍사무소앞을 지나는 시가지길을 따라 걸으면서 '까막동네'의 기억을 되살려보는 것은 어떨까.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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