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시비비 코너)금속노조 FTA 반대 파업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앞두고 민주노총 산하의 최대 산별노조인 전국금속노동조합이 파업을 벌이기로 해 불법·정치 파업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금속노조는 조합원 찬반투표 없이 파업을 결정해 절차적인 하자까지 있다는 지적을 안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금속노조의 최대 지부인 현대자동차지부가 당초 계획했던 부분 파업을 철회하고 전국 동시의 4~6시간 파업에만 힘을 집중하기로 결정해 여론에 한걸음 물러선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낳는다. 여론의 집요한 공세와 현장의 반발을 묵살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으로 대표적 강성인 현대자동차 노조의 변화를 예고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논란과 관련해서는 금속노조의 파업 이유인 한미 FTA 비준 반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관건이다. 노사 문제와 관계없다고 보면 불법 정치파업이 되지만, 광범위하게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고 한다면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한미 FTA의 수혜자로 꼽히는 현대자동차의 노조가 이를 저지하는 파업에 나선 것은 모순된다는 비판에 타당성이 있는지도 따져볼 문제다.

▨ 명분도 절차도 잘못된 정치파업

정부와 사용자단체, 대부분의 언론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거의 흡사하다. 아니 놀라울 정도로 똑같다. 평소에는 서로 으르렁거리다가도 노동운동 문제에만 부딪히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한편이 된다. 이번 파업의 경우 노사문제와는 거리가 먼 한미 FTA를 내세웠기 때문에 불법 정치파업이라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대표적인 수혜업종인데 이를 반대하기 위해 파업을 한다는 건 일부만을 위한 파업이라는 비난을 퍼붓는다.

'이번 파업은 특히 자동차산업이 한미 FTA 비준의 최대 수혜 업종이라는 점에서 그 명분을 찾을 수 없어 전형적인 반미(反美) 정치파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우리 시각이다. 관세가 내려가면서 미국시장에 대한 자동차 수출은 한해 8억 달러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그로 인한 직접적인 혜택은 국내 자동차산업의 일자리 증가와 복지 증대일 것이다.'(신문 사설)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은 이번 파업의 치명적인 약점이 될 만큼 거세게 공격받고 있다. '조합원 찬반투표 없는 파업 강행은 절차적 정당성도 잃었다. 노조 측은 이미 대의원대회서 FTA 저지 투쟁을 가결했다고 주장하나 설득력이 약하다. 전·현직 대의원 등 노조간부와 상당수 조합원들은 대자보와 유인물, 인터넷 댓글 등으로 파업 철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체 조합원 의사와 무관한, 파업을 위한 파업이나 다름없다.'(신문 사설)

국가 경제의 위기나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은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 여론을 확산시키는 데 가장 유용한 도구가 된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의 공격적 공세와 중국과 인도 등 후발경쟁국들의 맹렬한 추격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가적 에너지를 분산시키며 머뭇거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 더욱이 최근 원화가치 상승으로 기업들의 경영여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의 근로손실일수가 OECD 평균의 2배가 되고 미국의 5배가 넘는 현실에서 불법 정치파업으로 경쟁력 상승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전국경제인연합회 성명)

현대자동차 노조가 한걸음 물러섰음에도 여론은 강경일색이다. 파업을 전면 철회하라고 요구하면서 정부와 사용자 측의 보다 강한 입장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와 회사 측은 얄팍한 술수가 엿보이는 이번 부분 철회 결정에 결코 현혹되지 말고 원칙과 법대로 대응할 것을 촉구한다. 관행화된 불법·정치 파업을 뿌리 뽑기 위해선 결코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현대차 파업은 현대차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사안이기에 엄정 대처를 주문하는 것이다.(중략) 노조가 28∼29일 파업에 돌입할 경우 현대차 측은 어제 밝힌 대로 민·형사상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할 것이다.'(신문 사설)

▨ 노동자 전체 생존 위한 정당한 파업

노동계에서도 찬반투표를 거치지 않은 금속노조 지도부의 미숙함을 지적하지만 이를 근거로 해서 불법이라고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반박한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찬반투표 규정이야말로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는 악법이라고 말한다. 국제노동기구가 우리나라를 단체행동권 침해국가로 지목한 것도 이 때문이다.'(신문 사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파업의 목적과 명분이 원래의 모습을 잃은 채 불법 정치파업으로 매도당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노동계와 일부 언론은 지적한다. 먼저 한미 FTA가 노조의 파업 이유가 되느냐는 논란에 대해서는 보다 객관적인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근로조건 악화가 우려되는 사회적 현안에 대해 마땅히 단체행동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FTA와 근로조건이 무관함을 입증하지도 않은 채 불법 정치파업으로 단정했다. 근로조건 피해를 지적한 영향평가 보고서마저 무시하고 파업 자체를 불온시한 셈이다. 이는 정치적 파업의 불법성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노조의 정부정책 반대에 대한 정치적 탄압에 가깝다.'(신문 사설)

한미 FTA로 혜택을 볼 자동차 노조의 파업은 잘못됐다는 주장도 객관성을 상실했다고 비판한다. '한미 FTA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것은 자동차산업의 대주주들이다. 그 산업의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릴 가능성이 더 높다.'(인터넷 칼럼)

또한 사회적 쟁점 혹은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위한 파업이 불법이라고 하는 지적은 스스로 일관성을 잃었다고 꼬집는다. '이번 파업을 비판하는 이들은, 그동안 정규직 노조를 기득권에만 집착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매도하던 이들이기도 하다. 그러던 이들이 이번엔 자신들과 무관한 사회적 문제를 내세워 파업을 한다고 비난한다. 근로조건 개선을 내걸고 파업을 해도 비난하고 사회적 쟁점을 내세워 파업을 해도 비난하는 것은, 파업은 무조건 안 된다는 소리와 다를 게 없다. 이번 파업은 그동안 사회 각계에서 제기하던 요구에 부응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신문 사설)

이번 논란은 노동계에 중요한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노동운동이라면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일방적인 여론을 어떻게 바꾸느냐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국민 모두에게 주어진 근심이기도 하다.

'지금 금속노조 때리기는 산별노조의 존재이유는 무엇인지, 왜 파업에 나섰는지는 알 바 아니라는 반노조 정서의 등에 올라타 있다. 이렇게 노동운동을 벼랑으로 몰고, 노조의 입에 재갈을 물리면 우리사회는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극한의 대치거나 극도의 강요된 침묵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파업에 대한 불신을 씻는 것이 노조의 몫이라면, 파업에 씌워진 절망적인 이미지를 걷어내는 것은 모두의 일이다.'(신문 사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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