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5시 30분쯤 경북대 북문 인근의 한 스윙댄스장. 홀을 가득 메운 300여 관객(?)들로부터 웃음소리와 박수가 연이어 터져나왔다. 댄스공연? NO! 이날 행사는 다름 아닌 조문호(31) 씨와 리아(26·여·호주) 씨의 이색 결혼식이었다. 사회도 박순임 대구MBC 리포터가 맡아 결혼식장을 레크리에이션 장처럼 재미있게 만들었다.
결혼식은 판에 박힌 모든 형식을 깼다. 꽃 장식 등 각종 결혼식 도구는 없고 '이역만리 인연이 하나 되는 순간'이라는 글귀와 함께 조 씨와 리아 씨의 큼지막한 사진이 실린 대형 현수막만 붙어있었다. 조명도 멋졌다. 댄스홀 무대조명이 주인공을 비췄다. 주례사는 리아 아버지의 편지 낭독으로 대신했다. 그 편지에는 리아 씨가 살아온 과정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결혼식에 참석한 친인척들도 한 명 한 명 소개됐다. 그들은 포장마차에서나 있음직한 간이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불편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대신 폭소와 박수가 끊이질 않았다.
조 씨는 "대한민국 모든 신랑, 신부가 프레스로 찍어내듯 치르는 결혼식이 싫었다."며 "우리는 스윙댄스를 배우다 만났고, 이 자리에는 우리의 추억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를 아는 모든 분들을 이곳으로 초대했다."고 말했다. 오후 9시에는 2부 피로연이 시작됐다. 조 씨와 리아 씨가 몇 년 동안 배운 멋진 스윙댄스를 뽐냈다. 결혼을 축하하러 온 다른 하객들과 짝을 바꿔 가며 밴드에 맞춰 멋진 댄스 파티를 열었다. 밤 깊은 줄 모르고 열정이 뿜어져나왔고 환호성이 폭발했다. 결혼식은 주인공은 물론 하객들에게도 또 하나의 멋진 추억이 됐다.
결혼식이 진화 중이다. 최근 '생략'과 '이색(異色)'이 신개념 웨딩코드로 자리 잡고 있는 것. 판에 박힌 형식을 깨고 결혼이라는 큰 의미를 추억이나 이벤트로 만들고자 하는 예비 신랑, 신부들이 늘고 있다. 예비 신랑, 신부들은 "평생에 단 한 번 있을 결혼식은 뭔가 달라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주례사를 생략하는 것도 예식의 한 판도로 자리 잡았다.
오는 11월 초 결혼 예정인 김석기(30·대구 서구 평리동) 씨도 '붕어빵 찍어내기식' 결혼식을 하지 않기로 선언한 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결혼식을 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김 씨는 가족이 동시 입장해 단상에 마련된 자리에서 함께 결혼식을 치를 예정이다. 딱딱한 주례사를 생략하고 주례 단상도 없앤다. 대신 신랑, 신부가 가족들에게 준비한 '감사의 편지'를 낭독할 예정. 갑자기 조명을 꺼 무대가 어두워지면 준비한 마술쇼를 통해 신부에게 반지를 선물한다. 김 씨는 "결혼은 거쳐야 할 형식이 아니라 혼인의 의미를 되새길 축제가 되어야 한다."며 "모든 결혼 진행을 직접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10월 포항에서 결혼 예정인 정인석(32·대구 수성구) 씨도 호미곶에서 '깜짝' 이색 결혼식을 치를 작정이다. 신랑이 하늘에서 낙하산을 타고 입장하고 결혼식도 무대 세트장 위에서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정 씨는 "답답한 예식홀보다는 야외가 낫다."며 "신랑, 신부의 어머니가 주례를 대신해 편지를 낭독해주기로 했다."고 전했다.
웨딩업체에도 '특별한 결혼식'을 묻는 예비 신랑, 신부가 크게 많아졌다. '특별한 프러포즈를 하고 싶다' '안무를 연습해 보이고 싶다' '무대를 이런 식으로 꾸며달라'는 주문이 이어지고 있는 것. 방지영 웨딩예스 매니저는 "하객의 즐거움을 위한 마술쇼나 각종 이벤트를 펼치고 싶어하는 신랑, 신부가 많다."며 "짧게는 40분 정도인 반짝 결혼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들이 기획하는 결혼식을 원하는 고객들이 많다."고 했다.
대구웨딩연합회 관계자는 "결혼은 형식이 아니라 의미라고 생각하는 젊은 예비 부부들이 늘면서 의미 있고 특별한 웨딩을 주문하는 경우도 함께 늘고 있는 추세"라며 "그러나 결혼식은 두 사람은 물론 두 가족이 함께 만나는 것인 만큼 이색 결혼식을 준비하다 가족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해 일반 결혼식으로 치르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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