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신현정 作 '일진(日辰)'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오늘따라 나팔꽃이 줄 지어 핀 마당 수돗가에

수건을 걸치고 나와

이 닦고 목 안 저 속까지 양치질을 하고서

늘 하던 대로 물 한 대야 받아놓고

세수를 했던 것인데

그만 모가지를 올려 씻다가 하늘 저 켠까지 보고 말았다

이때 담장을 튕겨져나온 보랏빛 나팔꽃 한 개가

내 눈을 가렸기 망정이지

하늘 저 켠을 공연스레 다 볼 뻔하였다.

==========================================================

나팔꽃이 줄 지어 핀 마당 수돗가에서 하는 세수는 얼마나 호기로운가. 한 평 욕실에서 하는 여느 세수와는 격이 달라도 한참 다르겠다. 그래서일까, 시의 문면에 흐르고 있는 어조가 활달하기 짝이 없다.

눈만 뜨면 해야 하는 세수, 당연한 일을 하면서도 당신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없었던가. 오늘 아침 이 세수가 마지막 세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 내 몫으로 주어진 세수는 몇 번이나 남았을까 하는 생각.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하늘 저 켠'으로 건너가야 한다. 그날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서늘해진다. 하지만 그런 생각일랑 잠시 접어두자. 어서 빨리 세수를 마치고 일터로 나가야지. 영원의 한 순간에서 피어오른 '보랏빛 나팔꽃 한 개'에 시선을 꽂아두고. 아득한 '하늘 저 켠'은 잠시 잊어버리고서.

장옥관(시인)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이정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은 22일 현직의 자동 공천을 부정하며, 공정한 경쟁을 위한 공천 기준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를 당을 ...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변화로 인해 미국 연방대법원은 상호관세 부과를 위법으로 판결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적으로 글로벌 관세...
정치 유튜버 전한길이 그룹 슈퍼주니어 최시원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3·1절 기념 자유음악회'에 초청했으나, 가수 태진아 측은 출연 사실을 ...
태국의 유명 사찰 주지 스님 A씨가 여러 여성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논란에 휘말렸다. 최근 소셜 미디어에 유포된 영상에는 A씨의 아내가 다른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