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최고의 화이트와인을 생산하는 알자스 리퀴에르의 '위겔 에 피스' 사장 장 앙드레(79) 씨는 기자를 만나자 대뜸 판문점 이야기를 꺼냈다. 이역만리 인구 1천200명에 불과한 작은 농촌마을의 노(老)CEO가 판문점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하도 신기해서 "6·25 참전용사냐."고 물었더니 "세계 100개국 이상에 포도주를 수출한다. 글로벌 이슈에 관심이 없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12대를 이어온 전통의 와인양조장=프랑스 파리에서 고속국도로 5시간을 달려 도착한 알자스 지방의 콜마. 이곳에서 고속국도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다시 서쪽으로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20분여 달리면 연갈색 지붕으로 이어진 그림 같은 마을 리퀴에르가 나타난다.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랜 집은 1461년에 지어졌다.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과 건물의 90%는 1600년 이전에 지어진 것들이다. 이 마을 한복판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백포도주를 생산하는 '위겔 에 피스'의 본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 회사가 포도주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639년이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68년 전이다. 우리의 역사에서는 병자호란(1636년)이 일어난 지 3년 뒤인 셈이다.
현 경영자 중 한 명(앙드레 씨는 스스로를 그렇게 표현했다.)인 앙드레 씨는 '위겔 에 피스'의 창업주인 한스 울리히 위겔의 11대손이다. '위겔'은 창업주의 11대와 12대로 이뤄진 5명의 가족들이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의 출입문 위로는 한스 위겔이 1672년에 설치한 '위겔 1639년부터'란 표현과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간판이 자랑스레 내걸려 있다. 지하실에는 1715년에 제작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주통으로 기네스 북에도 올라 있는 8천800ℓ들이 포도주통 '쌩 까트린느' 가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시련은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좌절은 없었다=알자스만큼 전쟁의 풍파를 겪은 곳도 드물다. 17세기 초 알자스는 신성로마제국에서 가장 넓고 유명한 와인생산지였지만 30년전쟁(1618~1648년)은 알자스를 황폐화시켰다. 한스 위겔은 전쟁 말기 폐허가 된 리퀴에르로 들어와 포도밭을 일궜다. 이주 2년 후인 1639년 처음 포도주를 생산했고 위겔가는 이후 12대를 이어가며 줄곧 제조연도가 부착된 포도주를 생산해 오고 있다.
앙드레 씨는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이 알자스 지방을 비켜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만큼 유럽에서 알자스를 둘러싼 영토다툼은 치열했다. 전쟁 와중에 위겔 가문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앙드레 씨는 이에 대해 "나의 할아버지는 1869년 프랑스인으로 태어나 1870년에 프로이센 사람이 되었고 1918년에는 다시 프랑스인, 1940년에는 독일인으로 살다 1950년에 다시 프랑스인으로 작고했다."고 했다. 프랑스대혁명(1789년)과 수차례에 걸친 나폴레옹 전쟁, 프랑스-프러시아 전쟁(1870년) 등 수많은 전쟁 와중에서 알자스는 와인 생산지로서의 명성을 잃어갔다. 게다가 20세기 초 불어닥친 곤충떼와 포도질병은 알자스의 와인제조업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갔다.
하지만 좌절은 없었다. 위겔가는 전쟁이 끝나면 곧바로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오늘날 옛 알자스 포도주의 명성을 되찾는 토대를 쌓은 것은 앙드레 씨의 아버지 프레데릭 에밀 위겔이었다. 프레데릭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알자스의 포도재배지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이들은 당시 자신들의 노력을 십자군에 비유하고 있을 정도다, 프레데릭은 좌절한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 포도농장을 재건했고 지금 알자스 와인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화이트와인 생산지 중 하나로 자리매김을 했다.
▲ 세계 최고의 백포도주=오늘날 위겔은 게뷔르츠트라미너, 리슬링, 토까이 피노 등 최고급 포도주 11만 상자(12개들이)를 생산한다. 이 가운데 80~90%는 해외 100개국 이상으로 수출되고 있다. 이곳에서 제조되는 포도주는 위겔 가문이 소유한 26.3㏊(65에이커)의 포도원과 인근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진다.
앙드레 씨는 "세계최고라는 수식어를 굳이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저 "미쉘린 가이드(세계적인 레스토랑 평가 잡지)가 평가한 유럽의 3성급 이상 레스토랑에는 어디든 위겔의 포도주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 그는 대단한 프라이드를 가질 뿐이다. 거기다 위겔 가문이 세계적 명성을 가진 포도주를 생산하는 이탈리아의 마르께지 안띠노리, 프랑스의 샤또 무똥-로실드 등 세계적인 와인 명문 11개로 구성된 '프리미엄 패밀리 비니'의 회원이라는 점에서 스스로가 생산하는 포도주 품질에 대해 대단한 긍지를 갖고 있었다.
"회사가 '우리 제품이 우수하다'고 자랑하는 것과 고객, 특히 까다로운 고객이 우수하다고 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렇다면 프랑스의 한 작은 지방에 있는 포도주 공장이 이같이 장수하며 세계적인 명성까지 얻게 된 비결은 뭘까.
앙드레 씨는 "포도의 생산량이 줄더라도 포도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위겔 가문은 20세기 들어 대량생산보다는 포도의 품질은 높이고 생산량은 줄이는 위겔의 방법을 택했다. 그렇다 보니 위겔의 포도농장에서는 농약은커녕 비료조차 써 본 적이 없다. 비록 수확량은 알자스 평균 수확량의 3분의 2에 불과하지만 '귀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한 리슬링을 생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겔의 리슬링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앙드레 씨는 위겔로 인해 과거 알자스 포도주의 명성을 되찾고 있고 이 같은 명성은 대를 이으면서 더욱 빛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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