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도 여행은 즐겁다. 굵은 빗줄기 속에서도 꽃은 활짝 폈다.
'꽃이 피는 아름다운 골'이라 개화실(開花室)로 불리다가 음이 변하여 '개애실''개실'로 된 마을. 영남사림학파의 종조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종택이 있는 그곳에서는 갖가지 꽃들이 사방으로 전통의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곳은 350여 년간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일선 김씨들의 집성촌인 개실마을. 점필재 종택을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조선 선비의 강단 있는 풍모를 느낄 수 있다. 대가야박물관에 가면 성종이 친히 하사한 옥벼루 등 점필재 선생의 유품을 직접 만날 수도 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치고는 많이도 내렸다. 이럴 때는 지난여름의 추억을 정리하기보다는 가볍게 여행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이 더 좋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령에 가면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다. 잊힌 '대가야'의 흔적들을 하나씩 둘러보다 보면 잊어버리고 있던 주변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뗏목타기
가족들과 함께라면 무엇을 해도 즐겁다. 비가 와도 뗏목타기는 즐겁다. '아마존' 같은 정글이나 큰 강에서 탄다고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개실마을 바로 앞 폭 10m 남짓한 개울은 아이들과 뗏목타기에 정말 제격이다. 비가 억수같이 퍼부어도 수심이 깊지 않고 물살이 세지도 않다. 아이들은 우비를 뒤집어쓴 채 오히려 더 재미있다고 난리다.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도 뗏목타는 건 처음일 것이다. 1시간 남짓 대나무 노를 짚어가면서 개천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엿만들기, 엿치기
실내에서는 다른 체험이 기다리고 있다. 엿을 만들고 '엿치기'를 해보기로 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따뜻한 조청으로 엿을 만들기 시작했다. 손발이 맞지않는 팀은 울퉁불퉁 제멋대로다.
20여 분 당기고 나서야 하얀 엿색깔이 드러났다. 막대처럼 길게 늘려서는 '엿치기'를 하는 시간. 막대기로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치면 '딱' 소리가 나면서 경쾌하게 엿가락이 잘라진다.
"세상에 내가 만든 엿을 먹어보다니…." 색다른 경험이다.
박물관은 살아 있다
고령은 삼국시대 이전에 고대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웠던 대가야의 수도였다. 철의 왕국 대가야는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주변지역으로 지배력을 확대했고 가야 도공의 숨결은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바탕이 됐다.
고령읍 지산리 일대 200여 기의 지산동고분군은 가야 최고(最古)의 고분군이다. 이곳에서는 대가야양식의 다양한 토기와 철기, 금관 등이 출토돼 대가야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거센 빗줄기 때문에 44, 45호 고분 등 지산동 고분군에는 올라가지 못했지만 박물관에서는 1천500년 전 가야사람들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대가야박물관 바로 옆의 왕릉전시관은 중국의 진시황릉을 연상케 하듯 44호 고분의 내부를 그대로 보여줘, 장관이었다.
특히 순장돌덧널(무덤) 한 곳에서는 아빠와 딸의 영원한 사랑을 보는 듯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무덤에서는 30대 전반의 남자가 8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안고서 가지런히 누워 있는 모습의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아빠와 딸이 함께 순장된 것으로 추정됐다.
왕과 더불어 시종, 무사, 창고지기, 마부, 일반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순장됐다는 사실을 여러 무덤을 통해 확인하는 것도 생생한 박물관체험이다.
대가야박물관 1층 어린이체험관에서는 대가야고유의 문양을 만들어보거나 풀무질을 해보는 등 다양한 체험거리가 있다.
우륵박물관에서는 가야금을 제작한 악성 우륵 선생의 흔적을 되짚어 보고나서 가야금과 아쟁, 해금 등 전통국악 현악기들의 소리를 직접 들어볼 수 있다. 가야금배우기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자.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고령·정창구기자 jungcg@msnet.co.kr
♠ 경험자 Talk
볼거리가 단순할 것이라 걱정했지만 가족단위로 구성된 여행단은 놀거리, 먹을거리가 풍성했다고 평가했다.
▷양명숙(44·경기도 수원시)=비가 와서 운치가 있어서 더 좋다. 고령에 대가야 고분이 많다는 것만 알고 왔는데 참 고분이 많다. 빗속에 뗏목타기 체험이 좋았다. 위험하지 않은데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전통마을에 맞게 엿 만들기 체험도 신선했다.
▷김영규(30·경기도 성남시)=아기가 어려서 함께 다니기 힘들어 큰 맘 먹고 왔는데 재미있었다. 엿 만들기 하는 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내가 만든 엿이라서인지 더 맛있다.
▷이정남(71·서울 구로구 고척2동)=비 오는 개실마을은 참 좋았다. 엿을 만들어 '엿치기'를 해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박물관은 좀 지루했다.
▷임석(38·서울 강서구 염창동)=뗏목타기와 엿 만들기 체험 등 체험프로그램은 아이들과 하기에 딱 맞았다. 문화해설하는 분이 참 자세하게 해줘서 인상깊었다. 경상도 음식 맛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을 바꿨다.
♠ 주머니 Tip
-개실마을 농촌체험은 사전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011-810-5936)
-첫째 날
점심 및 개실마을 체험 10,000원
저녁 대나무밥 7,000원
숙박 호텔 50,000원
-둘째 날
아침정식 5,000원
점심 청국장과 고등어구이 7,000원
입장료 대가야박물관 2,000원
왕릉전시관 2,000원
우륵박물관 2,000원
*이번 주 여행코스: 개실마을(점필재종택 둘러보기, 개실마을 둘러보기, 엿만들기-뗏목타기)-대가야박물관, 왕릉전시관-양전동 암각화-우륵박물관-반룡사
*'어서 오이소' 다음 주(8, 9일) 코스는 '영화 가을로 촬영지와 봉화 청량산, 닭실마을-울진·봉화' 편입니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