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東廠(동창)

중국 明(명)나라에 東廠(동창)이라는 조직이 있었다. 관료와 백성의 동정을 몰래 살피는 황제 직속의 비밀 정보기관이었다. 성조 영락제 18년(1420년)에 창설돼 1644년 명나라가 망할 때까지 존속했다. 동창의 우두머리인 제독 동창에는 황제의 최측근 환관이 임명되었다. 황제의 눈과 귀를 독점하는 조직의 수장이 환관이었으니 환관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환관의 득세는 명 태조 朱元璋(주원장)의 넷째 아들인 영락제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환관들이 내응하면서 시작됐다. 제위에 오른 영락제는 반대파 제압을 위해 측근인 환관들을 중용했고, 황제 직속 첩보 및 감찰기관인 동창을 환관에게 맡겨 문무관료는 물론 백성들의 일상생활까지 철저히 감시했다.

명나라 환관의 폐해는 극심했다. 後漢(후한)대나 唐(당)대에도 환관들이 황제를 시해하거나 왕조 전복을 기도한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그 폐해는 어디까지나 궁정, 즉 중앙정치에 국한되었다. 반면 명나라의 환관은 중앙정치뿐 아니라 지방행정, 변방의 군대에까지 간여하는 등 환관의 촉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명나라 말기에는 환관의 수가 정규 관료의 3배에 달하는 10만여 명에 달했고 특히 시정무뢰배 출신 환관 魏忠賢(위충현)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국 곳곳에 자신을 모시는 사당을 지었고 황제가 배례하는 공자묘에 자신의 위패를 모시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명나라 환관이 이처럼 권력을 壟斷(농단)할 수 있었던 것은 명나라가 권력을 황제에게 집중시키는 강력한 전제주의 체제였기 때문이다. 환관으로 대표되는 側近(측근)정치, 家臣(가신)정치의 폐해는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들과 측근들이 대형 비리에 연루되면서 임기 말 레임덕을 불렀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도덕성에서 우월하다고 자부하던 참여정부가 청와대 측근 참모들의 잇단 비리 연루로 곤혹스런 상황에 처했다. '특권과 반칙 없는 사회'를 강조했지만 측근 관리 실패로 도루묵이 된 셈이다. 언론의 의혹 제기와 비판에 소설 쓴다며 자만과 오기로 대처한 청와대는 비서실이 명나라 동창이 되지 않았는지 점검해봐야 하지 않을까.

조영창 논설위원 cyc58@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