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의 경치가 썩 아름다워 산자수명이라 하고, 비단에 수놓은 것 같은 강산을 뜻하여 아름다운 자연을 금수강산이라 한다. 그러나 이 아무리 수려한 비경인들 소나무가 없다면 멋진 풍광을 자랑할 수 있겠는가. 온갖 風霜雨露(풍상우로)를 다 겪으며 허공을 파고든 암봉이며, 아슬아슬한 암벽에 어쩌면 무너질 듯 위험 도사리는 기암의 틈에도 어김없이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으니 한 폭의 그림이다.
1970년대 초반에 시동을 걸었던 솔잎혹파리의 피해는 한때 애국가의 가사를 바꿀 정도의 위기에도 처해봤고, 최근에는 소나무재선충병으로 또 한 번의 몸살 앓는데 지구온난화의 위협까지 겹쳐 한대림은 북쪽의 고위도를 향하니 생태계의 변화와 더불어 설자리를 잃어가는 것 같다.
이제 여느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의 향토수종인 소나무를 많이 식재한 것을 볼 때 조경의 패턴이 많이 바뀌었구나 싶어 퍽 다행스럽고, 특히 아파트단지와 더불어 소나무 조경에 관심 있는 곳이라면 도심공간의 대소를 불문하고 향토수종으로 친환경 예술품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인 곳 또한 적지 않아 이는 기상적인 훼손을 치유할 수 있는 한 부분으로 보아 매우 바람직한 일로 여겨진다.
그럴듯한 소나무가 있거나 특이한 형태의 나무가 있다면 먼길도 마다하지 않는 것은 필자의 오래된 습관이다. 자랑할 만한 수형을 가진 소나무로는 검붉은 수피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고 줄기가 용트림하는 형상을 한 龜龍(구룡)소나무가 합천군 묘산리에 있고, 배롱나무 몸통 중앙에 뿌리내려 수십 년을 버티어 자라는 거대한 소나무가 삼척시 동막리 신흥사 사찰에 있다.
오랜 기간 나름대로 고유의 형태를 갖추고 품격을 유지한 속리산의 정이품 소나무와 같이 나무들은 부채꼴이나 원추형을 만들어 하늘 향해 자라지만 지면을 향해 자라는 나무가 있으니 청도 운문사의 처진소나무가 여기에 해당하고, 예천의 세금 내는 석송령도 이와 비슷하게 자란다. 필자는 흰 눈이 산천을 가린 강추위에도 청도 지촌리의 심산유곡을 마다하지 않고 나뭇가지의 결이 이어진 連理枝(연리지)를 찾아 본 것도 소개할 소나무 중에 하나로 꼽는다.
식물은 주 생장요소로 햇볕과 공기 그리고 수분을 필요로 하지만 어느 하나 충분하지 못하면 왕성하게 자랄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의 영역 확보나 고유 형태 또한 유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나무가 옮겨지기 이전에 자신이 자라오면서 나름대로 보유했던 형태를 가질 수 있도록 보듬고 가꾸어야 할 책무가 있다.
조경수는 차츰 커가면서 충분한 공간을 조금씩 잃어가는 것 같다. 주변의 여건으로 일조량이 불충분하거나 수목의 성장으로 공간이 협소해질 경우 한정된 자리에서의 영양공급과 수분섭취까지 제한을 받는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불행하게 커 가겠는가.
그러므로 불필요한 가지와 주변의 妨害枝(방해지)를 제거하여 일조량과 통풍을 도와줘야 한다. T/R율(수목의 지상부와 지하부의 비율)이 균형을 맞추어야 탄소 동화작용도 원만할 것이다. 소나무를 심고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였다면 제 모습을 잃기 전에 살펴 본래의 모습으로 가꾸어 보자.
그야말로 날아가던 황새도 앉을 수 있는 수려한 경관까지 연출한다면 아파트 단지가 공원이 되고, 나무가 발산하는 테르핀이 함유된 피톤치드까지 마음껏 마실 때 삶의 보금자리는 자연환경과 더불어 건강을 겸한 공간으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때늦은 여름에 하늘 서성거리며 산언저리에서 포효하던 검은 구름도 저 멀리 비켜가고, 붉은빛 발산하는 태양은 오늘도 여유있는 포물선 그리며 가을을 농익게 하고 있다. 해진 뒤 가을을 파고드는 또록또록한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 귀 속 구석까지 바쁘게 설친다. 소나무가 소나무 나름대로 모습을 이어갈 수 있도록 올 가을에는 여유를 가지고 한 그루의 소나무라도 다듬어 봄이 어떨는지….
권영시(대구 달서구청 공원조성팀장·시인)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