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훈 자서전 '일본을 이긴 한국인' 펴내

"야구는 가난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희망'

1980년 5월 28일. 재일한국인 장훈이 타석에 섰다. 투수는 변화구를 던지며 범타를 유도했다. 하지만 장훈은 빠른 공을 기다렸다. 마침내 투수의 손을 떠난 공. 장훈은 무의식적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짜릿함. 공은 오른쪽 담장을 넘어 2점 홈런이 됐다. 이 홈런으로 장훈은 불멸의 3천 안타를 달성하게 된다. 일본 프로야구사의 금자탑을 재일한국인 장훈이 세운 것이다.

장훈의 인생은 고난과 인내의 연속이었다. 중학교 때에는 '조센진'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고, 고교에서는 재일한국인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경기에 나가지 못했다. 경기장에 나가도 벽에 쓴 '장훈을 죽여라.'는 낙서를 봐야했다. 울분과 분노를 배트에 실었다. 그는 "내가 치는 홈런과 안타는 자랑스러운 우리 조선동포들을 차별하는 비열한 일본인에 대한 시원한 복수다."라고 했다.

장훈(67)이 자서전 '일본을 이긴 한국인'(평단 펴냄)을 냈다. 일본 프로야구를 불태운 그의 신화와 야구,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다.

장훈은 23년간 선수생활을 했다. 그가 야구를 시작한 것은 가난 때문이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김이 무럭무럭 나는 냄비에서 고기를 집어 먹거나 계란을 3, 4개 툭툭 깨어 먹는 것을 보고 넋을 잃었다."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싶었다."는 단순함은 그 당시 생존이 걸린 사투였다. 장훈의 부모님은 고향이 한국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으로 가 장훈을 낳았다. 가난과 질시 속에서 야구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분노와 울분을 날려버릴 수 있는 해방구였다. 초교 5학년 때 처음 야구를 만났고, 그 이후 야구의 매력에 빠져지냈다.

'일본을 이긴 한국인'은 야구소년의 꿈과 현실, 신인왕과 수위타자가 되기까지의 고난, 명문 자이언츠 입단, 3천 안타의 기록 등 어린 시절 화상을 입어 오른손에 장애를 갖고 있는 한 인간이 어떻게 고통과 절망을 딛고 우뚝 섰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44쪽. 1만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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