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대구 중구 동인4가 '금융피해자 파산학교'.
김모(45·여) 씨가 조심스레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김 씨는 운영하던 식당의 손님이 줄어 결국 폐업한데다 남편까지 건설현장에서 크게 다쳐 수술비를 마련하던 중 4천700여만 원의 빚을 진 것. 지난달 29일 파산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파산 신청 서류를 준비하던 중 보다 자세한 상담을 받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김 씨는 "돈을 갚으라는 독촉이 계속되고 있지만 더 이상 빚을 변제할 능력이 없는 형편"이라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곳을 찾았는데 이제야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들을 돕는 '금융피해자 파산학교'(본지 2006년 8월 1일자 6면 보도)가 19일로 100회차를 맞는다. 파산학교는 지난 2005년 8월 문을 연 뒤 매주 토요일마다 강의를 열어 파산 및 면책 신청 방법, 법 절차 등을 가르치는 파산·면책 상담소. 그동안 파산학교를 거쳐간 '수강생'만 1천600여 명으로 이 가운데 380명이 파산학교의 도움을 받아 법원에 '파산 및 면책' 신청을 했고, 이 가운데 4명을 제외한 모두가 파산 및 면책 판결을 받았다.
이주영(26·여·가명) 씨도 파산학교를 통해 희망을 찾았다. 지난 2001년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3천만 원의 빚을 진 이 씨는 끊임없는 빚독촉에 시달리다 지난해 12월 파산학교를 찾아 도움을 받았고, 지난 11일 마침내 파산·면책 결정이 내려졌다.
100차까지 이어오는 동안 학교 규모도 커졌다. 서창호(35)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 혼자 교육과 상담을 맡았던 초기와는 달리 상근직원도 4명으로 늘었고, 자원봉사자 10여 명도 힘을 보태고 있다. 특히 파산학교를 통해 파산 및 면책 결정을 받은 이들은 인권모임 '좋은모임회'를 구성, 시민단체들과 함께 금융피해자의 인권 증진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파산학교의 전망은 밝지 않다. 금융채무불이행자들의 도덕적 해이나 브로커를 통한 파산 신청이 적지 않다는 비판 여론이 일면서 법원에서 지난 3월부터 20, 30대 소액 채무자들의 파산 신청에 대해 잣대를 엄격히 적용하고 있기 때문. 재정난도 무시할 수 없다. 시민들의 후원금이나 기부금으로 근근이 운영되고 있지만 상근 직원들의 인건비조차 주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그럼에도 파산학교는 앞으로 금융피해자 문제 전반으로 활동의 폭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금융채무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연석회의'라는 전국 네트워크와 함께 11월 21일을 '금융피해자의 날'로 정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정책적 대책을 요구한다는 것. 또한 대구시가 운영 중인 '저소득층 생활안정자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등 사회 운동을 벌일 계획도 세웠다.
특히 제100차를 맞아 지금까지 파산학교를 거쳐간 이들 중 30명의 사례를 담은 '단 하루라도 빚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제목의 책도 펴낸다. 이 책을 통해 대다수가 낭비나 빚을 떼먹기 위해서가 아닌 의료비나 실직, 부도, 잘못된 보증, 사기 등의 원인으로 금융채무불이행자가 됐으며 이들의 인권 개선을 위한 사회구조적인 대안의 필요성을 역설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19일 오후 4시부터 대구 수성구 문화웨딩홀에서 출판물 발간식과 기념식을 가질 예정이다.
서창호 상임활동가는 "'신용불량자'라는 말은 '금융채무불이행자'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금융채무를 개인적 책임으로만 보는 시각은 여전하다."며 "이들 뒤에는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양산, 고금리 등 사회적 배경이 있음을 알리고 사회적 차원에서 함께 풀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채무자 파산학교 053)290-7474.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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