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2000시대.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투자자들의 기대심리도 한껏 달아오르고 있다. 연말까지 주가가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들이 속속 나오면서 개미투자자들은 내심 '대박'의 꿈에 젖어있다. 하지만 '과유불급'. 너무 주식에 집중하는 것도 병이 된다. 주식중독증(스톡홀릭:stockholic)은 인터넷 중독, 쇼핑 중독 등의 증세와 마찬가지로 각종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들을 발생시키며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게 만든다.
◇나 중독에 빠진거야?
직장인 김모(36) 씨는 최근 6년간 다녔던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주식시장에 뛰어든지 1년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처음에는 "잃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저축한 돈 4천만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주가가 뛰면서 투자 10개월 만에 돈이 1억 이상으로 불어나자 "이것이 바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씨는 "지난 검은 목요일 사태 때 3천만원 이상의 손실이 나자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아 꼬박 닷새 동안 밤잠을 포기하고 단타매매에 매달리기도 했다."며 "그 때 무모한 결정일지라도 회사를 그만두고 제대로 한번 주식에 뛰어들어봐야겠다고 마음 먹게 됐다."고 했다.
강모(34'여) 씨는 최근 주식중독에 빠진 남편 때문에 처음으로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게 됐다. 자상한 성격에 명문대를 나와 괜찮은 직장에서 인정받고 있던 남편. 하지만 결혼 후 1년쯤 지났을 때 이미 주식중독에 빠져 빚이 1억을 넘어서고 있었다. 겨우 설득해 주식과는 인연을 끊기로 하고 같이 산지 3년. 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인감까지 몰래 가져가 공동명의의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 주식투자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빚이 모두 얼마냐고 추궁하는 아내에게 "내가 모든걸 잘못했으니 이혼하자."고 적반하장 격으로 맞서고 있는 상태. 강 씨는 "일단 남편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병원 치료라도 받으면 좋겠는데 도무지 인정하려 들지 않는 점이 제일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아직 난 괜찮아
최근 직장에서 인터넷 창을 띄워두고 하루종일 일 보다는 시세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이버 주식중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틈만 나면 주식사이트를 몰래 들여다보며 주식을 사고 팔기에 여념이 없다.
회사원 이모(32) 씨는 "주식에 푹 빠져사는 동료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며 "상사의 눈을 피해가며 주식창을 잔뜩 띄워놓는 것은 기본이고, 회의 중에도 딴 생각에 빠져있거나, 말을 걸어도 동문서답을 하는 경우도 잦다."고 했다.
상황이 이쯤 되다보니 한화그룹, GS 칼텍스, 신세계, 롯데백화점 등 상당수 기업들은 업무용 컴퓨터를 통해 주식 관련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을 차단하고 나섰지만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휴대전화, 개인정보단말기(PDA) 등을 통해 언제 어느때는 정보를 수집하고 주식을 거래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비쿼터스'라는 시대변화가 주식중독자들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는 상황인 것.
대다수의 주식투자자들은 "아직 난 괜찮아."라고 부정하고 있지만 의외로 주식중독자들의 숫자는 상상을 넘어선다. 2000년 발표된 경희의료원 반건호(정신과)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204명의 조사 대상자 중 27.5%(56명)이 주식중독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주가가 하락하면 신체 특정부위가 아프거나 강박관념, 우울증, 적대감 등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반 교수가 논문을 발표했던 때는 사이버주식거래시스템이 확산되기 이전. 메신저와 PDA, 휴대전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접속이 가능해진 지금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주식중독에 빠져 있으리란 사실을 쉽게 추측해볼 수 있다.
투자자 서모(39) 씨는 "주식 시장을 떠나지 않으면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중독에 빠져있는지를 알수 없는 것이 바로 주식중독"이라며 "최근 개인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컴퓨터에 접속하지 못하고 있다보니 얼마나 심각한 중독상태였는지를 느낄수 있었다."고 했다.
◇심하면 가정파탄까지도
주식중독으로 병원을 찾는 이들의 상황은 생각보다 좀 더 심각하다. 최태진 원장(신경정신과 전문의)은 " 주식중독 증세로 병원을 찾는 이들이 종종 있다."며 "대부분의 환자들이 전재산을 다 탕진하고, 가정이 해체되는 돌이킬수 없는 위기에 처해야 겨우 병원을 찾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심지어는 상담 치료비를 감당할 능력이 안돼 중도에 치료를 포기하고 단순히 진정제 등의 약물처방만으로 의존하는 경우도 많다고.
최 원장은 "주식중독증은 도박중독과 똑같은 3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했다. 초반에는 돈을 따는 단계, 이어서 돈을 잃는 단계, 마지막으로 절망적인 단계에 이르러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는 도박(혹은 주식)으로 돈을 벌어 한방에 인생역전하겠다는 패턴을 보인다는 것. 치료도 쉽지가 않다. 본인의 의지가 치료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지만, 돈과 관련된 부분이다보니 마음속 깊숙히 숨겨진 근원적인 욕망까지 다스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하나대투증권 강윤근 팀장은 "증권회사에서 18년을 일하면서 각종 스트레스성 질환은 대부분 겪어봤다."며 "아무리 직업이라고는 하지만 계속적으로 주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보니 발생하는 증상들"이라고 했다. 그는 "주식에 투자하는 시간을 스스로가 제한해 두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운동이나 취미 생활 등을 찾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주가 2000시대의 새로운 투자 패러다임
중독의 위험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기는 하지만 '주식'은 여전히 포기하기 힘든 투자처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금융의 비중이 발달하고 돈이 돈을 버는 '카지노 자본주의'의 형태를 띄기 때문이다.
더구나 올해는 주식 전망이 아주 밝다. 하나대투증권 강윤근 팀장은 "연말까지 주가가 꾸준히 상승해 2천200선은 무난히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며 "지금이라도 주식에 뛰어들어도 늦지 않은 타이밍"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예전과 같은 투자방법을 고수해서는 곤란하다. 강 팀장은 "아무리 주가가 오른다고 하더라도 전체가 함께 오르는 형국이 아니라 오르는 주식과 내리는 주식의 경계가 분명해 질 것"이라며 "기업에 대한 충분한 내재가치 평가를 통해 장기적인 투자에 기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특히 사이버주식중독자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단타매매'로는 꾸준한 수익을 얻기 힘든 것이 요즘의 시장이다.
강 팀장은 "건전한 투자 패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잃어도 크게 손해가 없을 정도의 금액을 투자하고, 손해가 일정부분을 넘어설 때를 대비해 손절매를 하는 시점을 분명히 정해놓는 것이 좋다."며 "또 혼자 투자에 매달리기 보다는 동호회나 투자상담자 등의 조언을 받아 여러명이 함께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주식중독에 빠지지 않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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