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좌절을 던지다…의족 사회인야구선수 강상문씨

왕따·편견 날려버리고…이젠 공중목욕탕도 애용

▲ 사회인야구팀에서 투수를 맡고 있는 강상문 씨가 공을 힘차게 던지고 있다. 의족을 착용했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어렵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 사회인야구팀에서 투수를 맡고 있는 강상문 씨가 공을 힘차게 던지고 있다. 의족을 착용했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어렵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 의족을 착용하고 있는 강상문 씨.
▲ 의족을 착용하고 있는 강상문 씨.

강상문(37·대구시 북구 산격동) 씨는 사회인야구팀 성화 레이저스의 투수다. 지금도 그는 유연한 폼으로 시속 100km 속도의 공을 뿌려내며 상대 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운다.

하지만 평범한 선수는 아니다. 대부분 잘 눈치채지 못하지만 강 씨의 왼발은 의족이다.

그는 세 살 때 교통사고로 왼쪽 무릎 아래를 잃었다. "사고 당시 기억은 없습니다. 한창 걸음걸이를 할 즈음 집밖으로 나갔다가 버스에 치였습니다."

사고 순간을 회상하는 강 씨는 의외로 담담하다. 다리를 잃은 뒤부터 쭉 의족을 착용했다. 철이 들면서 남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의족은 걸어갈 때 양 발의 높이 차이가 나면 바로 교환해야 한다. 어릴 때는 1, 2년마다, 중고교생때는 2, 3년, 고교 이후부터는 5년 주기로 의족을 교체했다. 뼈는 자라지만 살은 자라지 않기 때문에 뼈를 잘라내는 수술도 10~12번 받았다.

어릴 때부터 의족을 착용하다 보니 아이들의 놀림에는 이골이 났다. 또래들의 놀림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은 편견이었다. 체육시간에는 항상 교실을 지키거나 운동장 구석에서 또래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강 씨는 "나도 뛰어다닐 수 있는데 선생님은 다칠까봐 못하게 했다."면서 "방과 후 축구, 야구하는 아이들이 끼워주지도 않아 완전히 왕따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았다. 축구공을 가지고 혼자서 드리블하거나 골대에 넣으면서 운동을 즐겼다. 항상 옆에 있어준 친구가 힘을 줬다. 죽마고우인 양명권(37) 씨는 중학교 때부터 든든한 운동 파트너다. 친구 양 씨는 강 씨에게 야구방망이를 선물하면서 "야구도 즐기고 친구들이 놀리면 때려주라."면서 용기를 줬다.

그는 1995년 사회인 야구팀에 들어갔다. 입단 테스트에서 감독 등이 공을 던져보라고 했다. 선천적으로 어깨가 강했던 강 씨는 힘차게 공을 던졌다. 팀에서는 "투수하면 좋겠다."면서 반겼다.

"야구팀에서 투수를 해보라고 했을 때 하늘을 나는 듯 좋았습니다. 드디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대우받는구나하고 생각하니 너무 기뻤습니다."

데뷔전은 1995년 3월 열렸다. 경기는 이겼다. 아무 생각없이 포수가 원하는 대로만 던졌다. 제구력은 엉망이었다. 안타는 적었지만 포볼이 많았다. 공을 던질 줄만 아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강 씨의 공은 빨랐다. 다행히 첫 시합에서 승리투수가 됐다.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는 "팀 타선이 도와줘서 이겼다."면서 겸손해했다. 이날 경기에서 비공식적으로 구속이 시속 120km를 기록했다고 한다. 다른 팀에서는 공이 빠른 투수가 왔다면서 놀라워했다.

야구선수 생활 12년 동안 많은 기록을 세웠다. 방어율, 최다승리, 탈삼진왕 등 투수가 받을 수 있는 상은 모두 휩쓸었다. 그의 전성기는 1998년부터 2002년. 최고 구속이 시속 125km까지 나왔다. 가장 짜릿한 순간은 중고교 야구선수 출신 선수들을 삼진아웃 시켰을 때다.

그가 좋아하는 팀은 역시 삼성 라이온즈다. 특히 양준혁 선수를 좋아한다. 그는 "투수 중에서는 오승환 선수를 좋아한다."면서 "대학 때 팔꿈치 수술을 받아 재활훈련을 통해 재기한 오 선수의 의지가 놀랍다."고 말했다.

그는 1998년 방어율상을 받았을 때 시상자로 이만수 선수가 나왔던 것을 잊지 못한다. 사회인야구는 프로야구와 달리 실책이 많기 때문에 방어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의 기록은 3.12였다. 사회인야구의 평균 방어율 5, 6점대에 비하면 놀랍다.

그는 공만 잘 던지는 것이 아니다. 타자 욕심도 많다. 12년동안 홈런을 10개나 때렸다. 100m를 18초대에 뛸 만큼 발도 빠르다.

강 씨에게 야구는 이제 삶의 일부가 됐다. 야구는 장애에 대한 콤플렉스까지 없애준 고마운 친구다. 그는 의족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어해 어릴 때부터 공중목욕탕에는 가지 않았다. 항상 집에서 목욕을 했다. 하지만 이젠 아무 거리낌없이 공중목욕탕을 드나든다. 이것도 야구 덕이다. 같이 운동하면서 다른 선수들과 부대끼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게 됐다. 매주 일요일마다 3, 4시간씩 동료와 연습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 네 살 된 아들과 함께 야구장에서 야구를 관람하고 공 놀이도 즐긴다. 아들이 야구에 흥미를 느끼면 야구선수로 키울 생각이다.

그는 요즘 사회인야구 플레이오프전에 대비해서 맹연습을 하고 있다. 집에서도 야구공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실밥의 감을 느끼기 위해 항상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이때까지 어깨를 무리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지금은 많이 상한 상태이다. 현재 구속은 시속 100km를 약간 넘을 정도. 올해 성적도 좋지 않다. 2승 2패에 머물렀다. 그래도 야구가 좋다.

"어깨가 약해져 더이상 공을 던질 수 없으면 야수로 출전할 생각입니다. 그래도 체력이 떨어지면 코치와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