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신춘문예의 계절

신춘문예의 계절이 왔다.

여러 '고시'가 있지만, 문학 지망생들에게는 신춘문예도 하나의 '고시'다. 누구에게나 문호가 개방된 1년에 단 한번 있는 시험이다.

'고시병'이 있듯 문학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병'이 있다. 11월만 되면 꿈틀대는 신춘문예 투고병(?)이다. 1호 봉투를 사고, 1년간 다듬고 다듬은 원고를 마지막으로 정리해 우편배달부의 손에 쥐어주고, 12월말 당선작 발표와 1월 1일 신문게재까지 그들에게 이 두 달은 피를 말리는 계절이다.

신춘문예 투고와 기다림도 고통이지만, 글 쓰는 것 자체가 사실은 고통이다. 그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 태생적 피가 흐르니, 어쩌면 우리 한국문학을 지키는 마지막 기사단일지도 모른다.

최근 문학의 침체를 거론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혹자는 "휴대전화의 액정에 혼을 빼고 사는 세대가 뒷방 늙은이에게 관심을 가지겠느냐?"는 자조섞인 말을 털어놓기도 했다. 어느 시인은 "시집을 내도 컴퓨터로 '복사' '붙여넣기' 하는 바람에 책이 안 팔린다."고 분개했다. 디지털 시대에 전통적인 글쓰기는 막을 내리는 듯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희한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대구의 각 수필대학의 수강생들도 늘어났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까요?"라는 질문도 심심찮게 받는다.

디지털의 반작용일까. '인터넷 왕국' 대한민국에 블로그 하나 운영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각종 동호회에 댓글 하나에도 그 사람의 글 솜씨가 요구된다. 거기에 대학 논술에 관심을 가진 학부모도 가세하고 있다.

글쓰기는 나를 말하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행위다. 글로 쓰여 질 때 의미가 생기는 경우를 간혹 경험한다. 아이디어도 머리로만 생각하면 맴돌 뿐인데, 무언가 쓰기 시작하면 그것이 구체화하는 것이다. '물을 나오게 하려면 수도꼭지를 틀어야 한다.'는 루이 라모어의 말을 실감하게 된다.

한국인만큼 문학적인 민족도 드물다. 시와 글쓰기로 공무원을 선발하던 민족이다. 각 신문마다 '시와 함께'와 같은 코너가 있는 것도 외국에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글쓰기가 쉽지 않은 것은 글을 '짓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글짓기'라는 말을 썼지만, 요즘은 '글쓰기'라고 한다. 남의 글을 흉내 내거나, 글의 형식미를 위해 겉모습을 꾸미는 것이 '짓기'라면, 자신의 삶과 생각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이 힘 있는 글 '쓰기'이다.

신춘문예에서 당선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지난해 매일신문에는 총 3천557편이 접수돼 6명의 당선자를 냈다. 500대 1이 넘는 경쟁률이다.

아직 이 세상에 퇴짜 맞지 않은 베스트셀러 작가는 없다. 당선되면 더 없는 영예이지만, 당선되지 못하더라도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글쓰기는 남들에게 작품을 선보이는 일이기도 하지만, 앞서 자신의 '마음 다스리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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