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화의 굿판 그 마지막, 애기소 - 김동리의
"저의 종교적인 관심은 어릴 때 마음속에 생겨난, 죽음의 문제에 대한 고민에서부터였습니다. 처음에 교회에 다니기도 했는데 근대문학 작품들을 다 읽고 나니까 상당히 허무주의 쪽으로 빠져버렸습니다……그러는 동안에 인간은 구원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구원의 구체적인 방법은 몰라도 인간의 문제를 신과의 관계에서 추구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지요."(김동리의 문학잡지 인터뷰 부분)
1913년 경주시 성전리 186번지에서 태어난 김동리는 부모의 불화로 원만치 않던 유년 시절, 두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게 된다. 소꼽동무인 선이의 죽음과 고종사촌 누이 남순이의 죽음이 그것이다. 이러한 일은 그로 하여금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이러한 개인적인 죽음의 체험과 신라 천년의 전설이 수없이 어려 있는 경주의 산하는 동리 문학의 중추적인 의미망을 형성한다. 나아가 식민지 시대 말기라는 절망적인 민족 상황도 이러한 경향으로 이끈 동기가 되었다. 어릴 적부터 줄곧 이어져온 죽음에 대한 고민을 거의 모든 종교를 섭렵하고 난 뒤 마지막으로 도달한 무속 신앙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을 수도 있다. 를 통해 그려진 무속신앙의 신은 오히려 새로운 인간형의 양상이기도 하다.
"사람뿐 아니라 돼지, 고양이, 개구리, 지렁이, 고기, 나비, 감나무, 살구나무, 부지깽이, 항아리, 섬돌, 짚신, 대추나무 가지, 제비, 바람, 구름, 바람, 불, 밥, 연, 바가지, 다래끼, 솥, 숟가락, 호롱불…… 이러한 모든 것이 그녀와 서로 보고, 부르고, 말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성내고 할 수 있는 이웃 사람같이 생각되곤 했다."(김동리, 부분)
주인공 무당 모화는 모든 자연물과 교감하며, 조화를 이룬다. 모화는 그러한 대상을 신이라 부르지 않고 님이라고 부른다. 님이라는 이름에는 신과는 다르게 우리에게 훨씬 친밀감과 보편성으로 다가온다. 모화에게 있어서 신은 곧 인간의 형상이기도 하다. 결국 동리는 를 통해 새로운 성격의 신과 새로운 형의 인간을 창조해야 한다고 믿고 그것을 샤머니즘의 인간으로써 시도했던 것이다.
경명여고 국어과 문학기행단 일행은 대구 경북 문화의 요람, 동리의 고향인 경주를 찾았다. 저녁 늦게야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서 바라본 경주는 안개비에 흐려져 있었다. 안개에 젖은 가로등 불빛들이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고도를 방문한다는 것은 기쁨보다는 아쉬움과 서러움의 정서가 주조를 이루는 모양이다.
다음 날 비가 내린 다음의 하늘과 바람은 맑았다. 성전리 동리 생가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시간만 허비하고 실패했다. 세월은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들고 말았다. 황성공원을 뒤로 하고 새로 난 도로를 한참 달리다가 갑자기 도로변에서 멈춘 곳, 도로 옆에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바라본 강 건너편에는 무너질 듯한 절벽이 병풍처럼 강을 막아서 있었다. 바로 그 아래가 김동리의 의 배경이었던 애기소였다. 작은 연못이나 저수지로 상상을 했지만 애기소는 강물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다. 애기소 너머에는 철길이 이어져 있고 곳곳에 늪지가 조성되어 잡풀로 가득했다. 어디선가 징소리가 나면서 '엇쇠! 귀신아, 물러가라'는 모화의 굿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문학의 고향이면서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 오히려 이런 곳을 찾아드는 것이 문학기행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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