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익숙한 근대 중국의 풍경은 대체로 몰락을 앞둔 제국의 모습이었다. 거기에는 황제와 신하, 정치와 혼돈이 있었다. 아니면 넘치는 물산, 아편전쟁, 외세의 침략, 팔기군과 굵직한 사건이 끊이지 않는, 말 먼지 이는 붉은 대륙이었다. 말하자면 우리는 망원경으로 중국의 국경과 황제의 삶을 살핀 셈이다. 이 책 '중국 근대의 풍경'은 그림과 사진을 통해 당시 중국인의 생활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책은 1884년 상하이 조계(租界)에서 펴낸 그림신문 '점석재화보' '도화일보' 등에 실린 그림 중 400여점을 발췌해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점석재화보'는 중국 근대 최초 그림신문으로 1884년부터 1898년까지 15년간 528호가 발행됐다. 19세기 후반 중국 풍경을 여덟개 주제로 묶고 중국의 법률문화, 시각문화, 교육, 여성의 삶, 공연문화 등을 미시적으로 살피고 있다. 당시 중국은 급변기였고 '점석재화보'는 중국의 근대 풍경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책은 다양한 그림과 사진 자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래서 두껍지만 얇게 읽힌다. 굳이 순서를 지켜 읽을 필요 없이 흥미있는 그림을 좇아 읽기만 해도 이해에 어려움이 없다.
소제목 '작은 발 한쌍에 눈물 한 항아리'는 중국 사람들은 전족을 무슨 이유로, 어떻게 신었으며, 또한 어떻게 벗어버렸는지, 전족을 신고 벗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세세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책은 중국 근대를 각각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풀어가고 있다.
베란다를 통해 거리를 내려다보는 그림의 제목은 '베란다에 기대어 거리를 내려다보는 경박한 부녀자들'이다. 그림은 여성들의 '집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을 제목은 '여성을 집안에 가두려는 욕망과 가두지 못하는 불안감'을 담고 있다.
'남녀가 경쟁적으로 금니를 박는 시대풍조'란 그림은 유행이 구매의욕을 촉진시켜 필요하지 않은 상품임에도 소비하는 풍조를 비판하고 있다. 당시 돈푼 깨나 있는 사람들은 유행을 좇기 위해 주저 없이 신체까지 개조했다. 중국 소설에는 금니를 박아 번쩍이는 이를 자랑삼아 드러내며 허허 웃는 사람이 종종 등장한다.
어린 아이를 삶아 먹는 사람, 자신이 살해한 남자의 목을 전당포에 맡기고 소송비를 마련하는 남자, 이웃의 닭이 자신의 보리를 먹은 일로 다툼을 벌이다 이웃 부부를 살해하는 남자, 재산을 탐내 동생을 솥에 삶아 죽이는 형, 마을 사람들이 불량배를 잡아 물에 빠뜨려 죽이는 모습 등 상상조차 힘든 그림이 세세하게 담겨 있다.
근대 중국인의 삶이 얼마나 엽기적이고 야만적인가를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중국 작가 루쉰의 소설 '광인일기'의 식인문화, 위화의 소설 '살아간다는 것'과 쑤퉁의 '쌀'에 등장하는 번쩍이는 금니가 작가의 상상이 아니라 세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536쪽, 3만5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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